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오이도는 현재는 완전히 육지화되었으나 본래 인천만과 군자만 사이의 작은 섬이다. 섬 북편에서 안말 조개더미의 존재가 보고된 1960년 이래 오이도 내 총 6개 지점에서 12기의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었다.
조개더미는 대체로 만(灣)이 형성된 포구 주위에 입지하며, 크게 북부 조개더미군(안말, 소래벌, 작은소라벌, 뒷살막조개더미), 남서부 조개더미군(가운데살막조개더미), 남부 조개더미군(신포동조개더미)으로 구분된다.
1980년대 이래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통하여 오이도가 신석기시대를 시작으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점유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는 90~99.9%가 굴인 ‘렌즈형’의 조개껍데기 덩어리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조개껍데기층을 이룬 형태이다. 신석기시대 주거지, 화덕자리도 조사되었는데, 석기, 골각기 등 도구상은 빈약한 편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신석기시대 오이도에서는 굴에 대한 집중적 채집이 단속적으로 반복되었다고 추정된다.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상대편년 및 탄소연대측정법(炭素年代測定法) 결과로 미루어 조성 시기는 대체로 3500cal BC를 전후한다.
신석기시대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가 확인되거나, 위치를 달리하여 조선시대의 봉수대(烽燧臺)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시대까지 살필 수 있는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주거지는 오이도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서해안 지역 주민의 주거 형식 및 온돌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