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각기는 동물의 뼈, 뿔, 치아, 패각[貝殼]등 유기물을 소재로 만든 도구류의 총칭이다. 구석기시대부터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패총과 동굴 등에서 뿔과 뼈로 제작된 골각기가 발굴되었다. 생산용구는 수렵·전투구, 어구, 경작구 등이 있으며, 비생산용구에는 장신구와 주술구 등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재료는 사슴의 뿔로 화살촉, 낚시, 작살, 빗창, 굴봉 등에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에 다앙한 골각기가 제작되었고,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도 작살, 빗창, 장신구, 화살촉 등에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칼손잡이, 갑옷, 장식품 등에 사용되었다.
골각기는 재료의 특성상 강인함과 광택성을 가지고 있어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이를 도구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처럼 산성이 강한 토양에서는 유기물질인 골각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패총·동굴유적 등과 알칼리성을 띠거나 저습지유적과 같이 공기가 밀폐된 곳에서는 양호한 상태로 보존된다.
우리나라에서 골각기의 사용은 구석기시대부터 사용되고 있으나 출토 예가 적고 종류는 단순하지만 석회암 동굴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골각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유적별로 출토되는 양과 종류가 많다.
청동기시대에는 골각기가 출토되는 유적은 많지 않으나 여전히 그 종류는 다양하다. 철기시대에는 다시 골각기의 사용이 활발하여 유적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유적별로 출토되는 양과 종류가 많아졌다. 삼국시대에는 그 종류는 단순화되지만 강인함과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여전히 사용된다.
골각기는 크게 그 사용 목적에 따라 생산용구와 비생산용구로 구별된다. 생산용구는 식료획득과 가공, 일상생활용구 등이 있으며, 비생산용구는 장신구와 주술구가 있다. 생산용구는 수렵 · 전투구, 어구, 경작구와 기타로 구분된다.
수렵 · 전투구는 골각촉, 골도(骨刀), 도자손잡이(刀子柄), 찰갑이 대표적이다. 골각촉은 사슴의 뿔이나 뼈를 가공한 것으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는 산발적인 분포를 보이나 철기시대에는 남해안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골도는 짐승의 관상골을 재료로 만든 것으로 오동유적에서는 관상골로 만든 것이 4점, 범방패총에서는 중족골로 만든 것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도자 손잡이는 철도자와 결합하여 생산구로서 기능을 갖는데 사슴의 뿔을 사용한다. 군곡리패총과 늑도패총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철기시대의 패총에서 다량으로 출토되며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출토된다. 찰갑은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몽촌토성 등에서 확인된다.
어구는 수상생물인 바다짐승, 어류, 패류를 포획하는 도구로 빗창, 낚시, 자돌구로 구별된다. 빗창은 암초지대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전복류를 채취하는 도구로 사슴의 뿔과 관상골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신석기시대 남해안 지방의 패총과 철기시대 군곡리패총에서 확인된다.
골각기로 제작된 낚시는 단식 낚시와 결합식 낚시의 침과 축이 있다. 단식 낚시는 골각을 이용하여 낚시를 제작한 것으로 신석기시대 동북 지방의 패총에서 5점, 청동기시대에는 동북 지방에서 4점, 고남리패총에서 2점이 확인되었다. 결합식 낚시는 침부분이 대부분 뿔 · 뼈 · 치아 · 패각으로 제작되며, 신석기시대 남해안 지방의 동삼동패총을 비롯하여 조기 · 전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패총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한편 축 부분은 소량이기는 하나 뿔 · 뼈 · 패각으로 제작되며 남해안 지방의 여서도패총, 연대도패총 등에서 확인된다.
자돌구는 바다 짐승과 어류를 찔러서 포획하는 도구로 작살과 찌르개가 있다. 작살은 동북 지방의 서포항패총과 남해안 지방의 신석기시대 조기 · 전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패총에서 집중되어 확인되며, 기능에 따라서 회전식과 고정식으로 구별된다. 철기시대의 남해안 동부 지역의 늑도패총 등에서 일부 확인된다. 한편 찌르개는 미늘이 없고 첨두이며 길이가 10㎝ 이상의 길이를 가져야 하므로 사슴의 중수 · 중족골을 사용한다. 신석기시대에는 동북 지방에서 확인되며, 철기시대에는 남해안 지방에서 확인된다.
경작구는 골각기 가운데 채집, 농작업에 관련하여 제작된 것으로 굴봉, 반월형패도, 아겸, 박자형녹각제품이 있다. 굴봉은 각좌 부위를 축으로 긴 주각을 손잡이로 하고 제1지각의 선단을 가공하여 인부로 만든 것이다. 이것들은 북한의 서포항패총과 궁산패총에서 확인되며,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것이다. 한편 철기시대 남해안 지방의 패총에서는 주각의 일부를 손잡이로 하고 지각을 인부로 하는 것이 출토되고 있다.
반월형패도는 반월형을 보이며 중앙부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서포항패총 7호 주거지에서 큰가리비로 제작된 것으로써 1점이 있다. 아겸(牙鎌)은 멧돼지의 견치와 고라니의 견치로 제작된 것이 있다. 궁산패총에서 출토된 멧돼지의 견치와 둔산유적에서 출토된 고라니의 견치를 낫으로 보고한 이래 아무런 검토 없이 농경구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멧돼지와 고라니의 교모흔은 인공흔적과 유사하므로 이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외에 생산도구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첨두기(尖頭器)로 남해안 지방의 수가리패총을 비롯하여 중기에서 만기에 속하는 패총에서 다수 확인된다. 이는 골각기 가운데 선단부가 뾰쪽하게 가공된 것을 일괄하여 부르는 것으로 사슴의 중수 · 중족골, 경골, 척골, 멧돼지의 비골로 제작된다. 이는 선단부의 사용흔으로부터 구멍을 뚫거나 토기 제작시 시문구(施文具)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골각기로는 바늘과 숟가락이 있다. 바늘은 세침과 바늘통, 삿바늘로 구분된다. 세침은 골각을 연마하여 가늘고 길게 만들고 선단부는 날카롭고 정부(頂部)에는 구멍이나 홈을 두어 의류의 가공, 편물 등에 사용되었다. 바늘통은 관상골 내부가 비어 있는 새뼈로 제작되었으며 세침과 세트로 출토된다. 세침은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계속하여 확인되며 바늘통은 청동기시대 동북 지방의 서포항패총과 초도패총에서 확인된다.
한편 삿바늘은 신석기시대에 동북 지방과 남해안 지방의 돈탁패총에서 확인되며, 청동기시대에는 동북 지방에서 일부 확인되며 이는 편물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숟가락은 사슴뿔이나 관상골을 숟가락 형태로 제작한 것이며 서포항패총, 호곡동유적 등 동북 지방에서 확인된다. 특히 초도패총에서 출토된 숟가락의 손잡이 부분에는 평행집선문과 평행선문이 음각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생산과는 무관하지만 사람들의 신체에 붙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장신구와 길흉화복을 점치는 주술구 등이 있다. 신체에 붙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골각기로 머리와 관련하여 빗, 목걸이와 관련하여 수식구, 손목 · 발목과 관련하여 팔찌(貝釧)와 발찌 등이 있다. 빗은 전체 형상이 Y자형을 띠면서 1개의 침상을 보이는 것과 편평하면서 여러 개의 침상의 선단부와 정부는 방형을 보인다. 이것은 철기시대 남해안 지방의 군곡리패총, 성산외동패총 등에서 확인된다.
수식구는 동물의 치아 · 각 · 뼈 · 패각 등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을 통해서 실로 묶어 몸에 붙인 것이다. 관상을 띠는 것은 조골·패각을 갈아서 만든 것이 있고, 환상은 상어의 척추, 패각의 중앙부를 관통시킨 것이 있다. 이외에 짐승의 치아, 하악골, 맹금류의 발톱 등을 이용한 것이 있다. 특히 연대도패총 7호묘에서는 인골의 발목 가까이에서 돌고래, 수달, 너구리의 치아 48점이 출토되어 발찌로 사용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이것들은 시기적 · 지역적 특성을 보이지 않고 전국에 산발적으로 분포한다.
팔찌는 투박조개·피조개 등의 중앙부를 파내고 마연하여 팔찌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통영 산등패총과 여수 안도패총에서 인골의 손목에 착장된 채로 출토되었다. 이것들은 남해안 지방의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대부분 확인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내륙인 금굴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주술구는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복골, 패면, 골각우, 악기 등이 있다. 복골은 사슴과 멧돼지의 견갑골을 불에 지져 거기에 생기는 흔적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구로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철기시대에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진서(晋書)』 마한전(馬韓傳)에 “첩작골이길흉(輒灼骨以吉凶)… …” 이라는 기록이 있다. 수골(獸骨)을 이용하는 점을 골복(骨卜)이라고 하며, 그 뼈를 복골(卜骨)로 불린다. 거북이 등을 이용할 때는 귀복(龜卜)이라고 하며, 그 껍질은 복갑(卜甲)으로 불린다.
가축의 뼈의 형태나 색 등으로 점치는 법과 뼈를 불로 태워서 균열방법으로 점치는 방법이 있다. 몽고에서는 양의 우견갑골(石肩甲骨)을 태우는 점이 행하여지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뼈가 껍질을 점상으로 몇 곳 태워서 균열 형상으로 점치는 법이 행하여졌다. 복골 · 복갑은 본래는 이 점상 작법(灼法)에 의한 것만을 가리키며,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 후기에 양 · 소 · 돼지 · 멧돼지 · 사슴의 견갑골을 점술에 이용하였다.
하남성 안양의 은허에서는 국사의 결정을 점치기 위해서 이용한 복갑이나 소나 양의 견갑골을 이용한 복골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으며, 그 수는 10만을 넘는다. 점술의 결과를 갑골 표면에 새긴 갑골문은 가장 오래된 한자로서 유명하다. 복(卜)은 종횡 양 방향의 균열을 나타내는 갑골문에 유래한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북도 무산 호곡유적, 경상남도 동삼동유적, 김해시 부원동 유적에서 사슴 · 멧돼지의 복골이 출토된 바 있다.
패면은 동삼동패총에서 확인되는데 가리비에 구멍을 뚫어 가면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골각우는 뿔이나 뼈를 이용하여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서포항패총에서 녹각제의 인물상과 사슴상, 멧돼지의 견치로 제작된 뱀이 확인되었다. 악기는 서포항패총 청동기시대 층에서 확인된 피리이다. 재질은 새의 관상골을 이용하여 상면에 직경 3.2㎜ 정도의 구멍 13개가 1열로 배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골각기의 재료는 종류에 따라 특정 부위가 선택적으로 취해졌다. 골각기의 재질로 일반적인 것은 사슴의 뿔이고 다음에 중수 · 중족골의 순이다. 이는 뿔이 수렵에 의해서 공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곡리패총을 비롯하여 여러 패총에서 보이는 녹각의 출토로부터 알 수 있다. 뿔로 제작된 골각기는 화살촉, 낚시, 작살, 빗창, 굴봉 등 거의 모든 골각기에 사용되는 만능의 재료였다.
치아는 서포항패총 · 연대도패총에서처럼 수식 장신구로 사용되는 예가 많으나 멧돼지와 고라니의 견치는 낚시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견갑골은 신석기시대에 첨두기, 철기시대에 복골의 재료로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 중수 · 중족골은 첨두기, 작살, 화살촉 등과 같이 길고 날카로운 도구의 제작에 사용되었다.
새뼈는 관상골의 내부가 공동인 것을 이용한 침통, 악기에 이용되었다. 어골은 가오리의 꼬리침과 상어의 척추가 장신구로 이용되는데 이는 손쉽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각이 생산구로 사용된 예는 반월형패도가 유일하며 대부분 관옥, 패천 등의 장신구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패각이 장신구로 이용된 것은 패각 자체가 광택을 갖기 때문이다.
한편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골각기로 오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류의 지느러미 뼈는 구멍이 뚫려 있어 바늘로 오인하는데 구멍의 양면에 돌기가 있어 이는 작업을 불가능하게 하므로 바늘이 될 수 없다. 또 멧돼지와 고라니의 견치는 성장하면서 교모흔이 생기는데, 이는 마치 마연한 것 같이 보여 골각기로 오인할 수 있다.
골각기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청원 두루봉동굴, 제천 점말동굴 등에서 뿔과 뼈로 제작된 것이 확인되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면 골각기가 출토되는 유적의 수가 급증하고, 동삼동패총과 여서도패총에서처럼 종류와 출토 양이 많아져 생활과 생업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신석기시대는 골각기시대라고 할 만큼 다양한 골각기가 제작되고 성행하며 석기와 더불어 신석기시대 도구의 체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을 이룬다.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청동기시대에는 골각기가 잔존할 조건을 갖춘 유적이 극히 소수이므로 우리나라 전체는 알 수 없지만 동북 지방의 예를 보았을 때 여전히 골각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철기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작살, 빗창, 장신구, 화살촉 등이 사용되어지고, 복골이 새롭게 등장한다. 삼국시대에는 대부분의 골각기들이 사라지나 칼손잡이, 갑옷, 장식품 등에는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