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고남리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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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태안군 고남면 안면도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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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태안군 고남면 안면도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내용

1983년 한양대학교박물관이 안면도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해 여러 조개더미를 발견함에 따라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1988∼1996년 모두 7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1988년 1차 발굴(A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조개더미가 각 1개씩 조사되었다.

상당부분 파괴가 진행되었던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제2호 조개더미)에서는 전형적인 빗살무늬를 갖춘 것에서부터 표면에 진흙을 바르고 마연하는 등 민무늬토기의 영향을 받은 토기편들까지 출토되었다. 이로써 이 유적의 상한과 하한의 시간 폭이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의 조개더미(제1호 조개더미)에서는 특별한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송국리형의 민무늬토기·세모돌칼·홈자귀·대패날·끌·붉은간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송국리 유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9년의 2차 발굴에서는 인근 B지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조사 때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조개더미(제1호 조개더미)와 함께 순수한 청동기시대의 조개더미가 발견되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2차 발굴에서는 총 3기의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형태는 말각장방형으로 장축방향은 동서축에서 약간 틀어졌다. 규모는 대체로 동서 약 3.5∼4.7m, 남북 2.4∼3.1m, 최대 움깊이 40∼65cm정도이다.

집터 바닥면에는 중심에서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화덕시설로 보이는 타원형의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부에는 배수구로 생각되는 홈이 파여져 있었다. 출토유물은 1차 발굴 때와 같은 양상을 보였다.

1990년 3차에서 1996년 7차 발굴까지는 2차 발굴지였던 B지구에서 130m 정도 떨어진 C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1·2차 발굴에서는 조개더미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존재여부만이 확인되었던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청동기층과 신석기층이 별도의 조개더미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층위를 이루며 발견되어, 안면도 지역에서 신석기문화와 청동기문화의 연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패각층을 분석한 결과 패각층을 이루는 조성성분의 대부분은 굴이었고, 그 다음으로 반지락·피뿔조개·대수리 등이 많았다.

1·2차 발굴 때 채집한 시료에 대한 C14연대측정 결과, 청동기문화층 및 주거지는 대략 2,400∼2,600년 전에 형성되었고, 신석기문화층은 서기전 15세기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4차 발굴 때 청동기문화층에서 채집된 샘플은 대략 2,490∼2,590년 전, 6차 발굴 때 신석기문화층에서 채집한 샘플은 3,070∼3,190년 전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안면도고남리패총 1차·2차·3-4차·5-6차·7차발굴조사보고서』(한양대학교박물관, 1988∼1997)
『신발굴매장문화재도록』(’97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7)
집필자
문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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