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조촌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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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널무덤 · 돌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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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널무덤 · 돌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유적은 매미산(56m)의 남서쪽 경사면에 있다. 1993년 초 매미산 남서쪽 기슭인 조촌동 상수도 취수장 부근의 택지조성공사현장에서 발견되었다.

1993년 5월과 1994년 3월에 2차례에 걸쳐 군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움무덤 4기 · 돌덧널무덤 14기 · 돌방무덤 6기 등 모두 24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내용
  1. 움무덤[土壙墓]

움무덤은 능선상의 경사면에 조영되었고, 봉분은 유구의 유실이 심해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장축방향은 경사면과 직교한 동서방향이다. 풍화암반의 생토면을 파고 시설되었다. 널이나 덧널의 사용여부는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구(周溝)가 돌려진 제3·4호분은 묘광의 길이 340∼370㎝ 내외, 폭 112∼135㎝ 정도로써 널이나 덧널의 사용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움무덤은 주구의 유무에 따라 둘로 구분된다. 주구가 시설된 제3·4호분은 묘광의 길이가 340∼370㎝ 정도이며, 장폭비가 3 : 1 내외이다.

주구가 시설되지 않은 제1·2호분은 묘광의 길이가 208∼216㎝ 정도이며, 장폭비는 3.85 : 1 내외이다. 주구는 묘광의 상단부에 눈썹형으로 시설되어 있었고, 정확한 규모 및 형태는 양단부가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었다.

  1. 돌덧널무덤[石槨墓]

돌덧널무덤은 능선의 남쪽 경사면에 자연암반층을 파내어 묘광을 마련하고, 그 안에 천장석의 상단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묻히도록 장방형의 돌덧널이 축조되었다. 이 돌덧널무덤은 구덩식과 앞트기식으로 구분된다.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장벽길이가 90㎝로 소형인 제20호분과 200㎝ 내외되는 제5·7·16호분 등 총 4기가 조사되었다. 이들 고분은 남쪽 능선의 5부 능선상에서부터 그 능선 상단부에만 분포한다.

능선의 상단부에서는 움무덤과 서로 공존하는 분포양상을 보인다. 장축방향은 제20호분만이 경사면과 동일한 남북방향이고, 나머지는 등고선과 평행된 동서방향이다.

돌덧널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할석을 이용으로 축조하였다. 최하단 벽석은 대형 판석을 서로 잇대어 횡으로 놓고 그 위로 이보다 작은 할석을 2∼4단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그런데 제16호분만은 소형 할석으로 벽을 축조하였다.

천장석은 유구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제20호분에서 일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본래에는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닥은 생토면을 고르게 다듬어 그대로 이용하였다.

앞트기식 돌덧널무덤은 5부 능선상에서부터 능선의 정상부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한다. 능선의 정상부에서는 움무덤과 서로 공존하는 분포양상을 보인다. 봉분은 유구의 유실이 심해 확인할 수 없었다. 묘광은 남쪽 경사면의 생토층을 L자형으로 파내어 장방형으로 마련하였다.

돌덧널은 지형에 따라 완전지하식과 반지하식의 구조가 있었다. 장축방향은 경사면과 평행한 방향이다. 벽석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할석으로 축조되었으며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제Ⅰ유형은 벽의 최하단에 장방형의 할석을 횡으로 눕히고 그 위에 이보다 작은 할석을 횡으로 4∼5단 올려놓았다. 제Ⅱ유형은 벽의 최하단에 판석형 할석을 주로 세우고 그 위에 이보다 작은 할석을 횡으로 4∼5단 올려놓았다. 천장석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제10호분의 경우를 볼 때, 본래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생토면을 다듬어 그대로 이용하였다. 입구는 보존상태가 좋은 제11호분으로 그 구조파악이 가능하다. 즉, 폐쇄석에 해당하는 남벽은 바닥면에 대형 할석을 양 장벽 사이에 끼도록 놓고, 그 위에 여러 단으로 올려 놓아 축조하였다.

  1. 돌방무덤[石室墳]

돌방무덤은 모두 굴식으로서 발굴지역의 제일 아래쪽에서부터 능선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전지역에서 조사되었다. 봉분은 유구의 유실이 심해 확인하지 못했다. 묘광은 장방형으로 경사면과 평행되게 자연 생토면을 L자형으로 파내어 마련하였다. 돌방은 반지하식으로 축조하였다.

축조방법은 보존상태가 양호한 제4호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돌방의 장벽은 최하단에 비교적 큰 판석형 할석 4∼5매를 서로 잇대어 놓고, 그 위에 이보다 작은 할석을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 내경되게 횡으로 눕혀 4∼5단 쌓아 올렸다.

북벽은 양 장벽 사이에 끼도록 대형 판석 1매를 수직으로 세웠다. 천장석은 2매의 대형 판석과 장방형 할석 3매를 서로 잇대어 올려놓았다. 바닥은 제2호분이 소형 할석편을 전면에 깔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널길[羨道]은 돌방의 동벽과 일직선으로 계속 이어지게 모두 동쪽에 두었다. 폐쇄석은 양벽 사이에 비교적 큰 할석을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이보다 작은 할석을 3∼4단 쌓아 올렸다.

  1. 유물

유물은 널[木棺]에 사용된 철기류가 주종을 이루고, 일부 토기류와 금동제 귀고리가 출토되었다. 유물이 빈약한 것은 여러 차례 도굴의 피해를 입고, 축조 당시 유물을 부장하지 않던 시대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박장(薄葬)의 예는 제4호분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모든 천장석이 원상대로 보존되고, 그 내부에 도굴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물은 목관에 사용된 철기류만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대는 고분의 구조와 출토유물로 추정해 보면, 움무덤은 주구가 시설된 것은 3세기 중반경, 주구가 시설되지 않은 것은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초반을 전후한 시기로 여겨진다. 돌덧널무덤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6세기 말, 앞트기식 돌덧널무덤이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로 추정된다. 굴식 돌방무덤은 6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조촌동고분군」(조인진,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고분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군산 조촌동고분군』(군산대학교 박물관·군산시, 1996)
집필자
문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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