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개발협의회에서 약 35만여 평에 이르는 문흥지구 택지개발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92년 7월 2일∼8월 19일 조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고인돌 2기와 삼국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경질토기 산포지로 추정된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경질토기 산포지로 추정된 지역은 당시 포도밭이었다. 이 지역은 월각산(274m)에서 이어 내린 동남쪽 줄기의 서남사면에 위치한다. 그 앞쪽으로는 골짜기를 개간한 논이 펼쳐져 있고 작은 개울이 흐른다. 유적의 남쪽에는 문산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이 있다고 보고된 지역은 문산마을의 남쪽에 위치한다.
고인돌로 보고된 2기는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발굴 결과, 고인돌은 자연돌을 잘못 본 것이며, 경질토기 산포지는 조선시대 전기의 살림터, 폐기구덩이로 밝혀졌다. 경질토기 산포지로 추정된 지역에서는 모두 5개의 유구가 드러났다.
유구 중 특이한 것은 제3호로 긴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폐건축자재인 기와, 전돌, 큰 바위, 돌멩이들, 생활용기인 질그릇, 자기, 옹기 등을 묻었다. 한편, 제1호는 여러 개의 적심석이 드러나 집터로 추정되고, 제2호는 돌멩이를 2∼3줄 쌓은 기단이다.
제4호는 원통형 저장움으로 생각되나 불분명하고, 제5호는 유물의 종류와 분포 특징으로 보아 폐기터로 여겨진다. 유물은 기와와 전돌·질그릇·옹기·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연대는 자기류의 형식을 기준으로 볼 때, 제1·2·3호는 주로 16세기, 제5호는 17세기에 해당된다.
이 유적에서는 중국 명나라 현종 때의 연호 ‘成化’(성화: 1465∼1487)명 기와가 출토되어 연대를 알 수 있었고, 백자와 분청조각이 다량 출토되어 15·16세기의 이 지역의 생활수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 전기의 기와·전돌·질그릇·옹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그릇구성 전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