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군산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금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장수천(長水川)과 장계천(長溪川)이 합쳐진 곳에서 남서쪽으로 3km 남짓 떨어진 지점인 삼장마을 북쪽 능선에 있다.
고분은 마을의 북쪽을 감싸는 능선의 북사면을 제외한 거의 전지역에 걸쳐 산재되어 있다. 대형 고분은 주능선에, 소형 고분은 대체로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 유적을 보면, 지석묘가 삼봉리(三峰里) 등지에 있고, 수혈식석곽묘로는 삼봉리(三峰里) · 삼고리 · 봉서리(鳳棲里)고분군 등이, 횡혈식석실분으로는 송천리(松泉里)고분군이 있다. 이 외에 장수지역에서 파악된 성(城)과 봉수대 유적(烽燧臺遺蹟)이 16개소에 이른다.
발굴조사 결과, 모두 19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이들 고분은 능선의 정상과 남쪽 경사면에 생토나 퇴적토를 파내어 토광을 마련하고, 그 안에 벽석이 지하에 묻히도록 축조된 수혈식석곽묘이다. 봉분은 파괴되어 크기와 모양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장축방향은 주로 등고선과 평행한 동서로 두고 있다. 다만, 주곽의 주변에 위치한 소형 고분과 방추차가 출토된 제5·15·19호분과 삼족토기(三足土器)가 출토된 제7호분은 남북으로 장축방향을 두고 있다. 석곽의 배치상태는 한 봉분 내에 여러 기의 석곽이 배치된 다곽식(多槨式)으로 추정된다.
석곽의 규모와 평면형태는 고분의 위치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고분의 규모는 능선의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더욱 대형화되고, 평면형태도 장방형에서 세장방형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석곽은 모두 천석(川石)을 이용해 하단부는 가로쌓기로, 그 상단부는 모로쌓기 방식을 혼용해 수직으로 쌓아올렸다. 벽석과 벽석 사이에는 깨뜨린 천석편으로 메꿨다. 천장석은 장방형의 천석을 이용하였다.
바닥시설은 고분의 위치에 따라 다소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쪽 경사면에 해당하는 가지구의 제1·2·3·5호분 등은 소형 천석을, 반면에 제4호분의 경우에는 토기편을 이용하여 전면에 걸쳐 깔았으며, 그 외의 모든 고분은 생토면을 다듬어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철기류, 장신구류 등이 있다. 특징적인 것은 토기류가 고령 지산동, 합천 반계제 · 옥전, 함양 상백리 · 백천리를 비롯해 전북의 수계지역(水系地域)에 위치한 남원 두락리 · 건지리 출토품과 유사한 속성을 띠는 고령양식(高嶺樣式)이라는 점이다.
연대는 고령양식의 토기를 근거로 볼 때, 5세기 말엽이나 6세기 초가 중심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래에 이 유적의 성격은 백제문화권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를 계기로 백제에 정치적으로 복속되기 전까지는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전북의 동부 산간지역에 위치한 이 지역은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의 준령들로 가로막혀 있어서 인접지역, 특히 고총고분이 산재된 남원의 동부지역과는 다른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