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1994년 3월에 안성천유역과 아산만 일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발견되어, 1994년 10월 4일∼10월 24일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민무늬토기시대의 주거지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신창면 남성리와 오목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궁평리 유적(宮坪里遺蹟)·백암리 유적(白岩里遺蹟)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들 아산만 일대의 선사유적은 곡교천과 삽교천(揷橋川)의 대안(對岸)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 완만한 구릉지대에 분포되어 있다.
확인된 4기의 주거지는 모두 방형계(方形系)의 평면구조를 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제1·2·3호 주거지는 중복되거나 인접되어 있는 반면, 제4호 주거지는 15m 거리를 두고 축조되었다. 주거지의 장축방향은 제1·2·3호 주거지는 동북-서남방향이이고, 제4호 주거지는 이와 직교되는 서북-동남방향이다. 평면형태는 제2·4호 주거지가 세장한 장방형이고, 제1·3호 주거지는 방형계이다.
수혈 깊이는 제3·4호 주거지가 제1·2호 주거지보다 상대적으로 얕게 축조되어 있다. 벽면은 대체로 수직에 가까운 상태로 처리되었다. 바닥처리는 제1·2호 주거지만이 생토면 위에 회백색 점토를 깔아 다져 수평면을 유지하면서 매우 단단하게 만들었고, 제3·4호 주거지는 생토층인 적갈색 사질점토층을 그대로 바닥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 내·외부에 정연한 배치상을 보여주는 주공(柱孔)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제1호 주거지 내부 남쪽벽 양옆 모서리에 각각 1개의 주공이 배치되어 있었다.
제2호 주거지는 비교적 큰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서쪽 벽면을 따라 중간에 2개의 큰 구덩이와 작은 구덩이 2개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북쪽 끝 모서리부분에서 1개의 주공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구덩이는 비교적 넓고 깊이가 얕은 편이다. 동벽 가까이에서도 구(溝) 시설이 끝나는 북쪽 끝에 2개의 구덩이가 확인되었고 중간지점에서 구덩이 1개가 조사되었다. 제2호 주거지는 외곽이나 벽면을 따라 정렬된 주공은 조사되지 않았으나 서벽 중앙에 있는 주공 3개와 동벽에 있는 주공 1개가 중심 기둥일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제4호 주거지는 남쪽 벽과 동쪽벽 연결부분인 모서리에서 주공 1개가 확인되었다. 제3호 주거지에서는 주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노지(爐址)는 제1·3호 주거지에서만 확인되었고, 제2·4호 주거지에도 노지가 배치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제1호 주거지는 주거지 내부 중앙에 3개의 노지가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제3호 주거지는 1개의 노지가 아무런 시설 없이 바닥에 그대로 설치되었다.
노지의 형태는 바닥을 얕게 판 원형과 타원형으로 불에 달구어져 붉게 변해 있었다. 노지 내외에는 목탄(木炭)과 요토(燒土)가 남아 있었다. 출토유물은 민무늬토기편이 대부분이고, 공열토기편, 구순각목토기편, 구순각목공열토기편, 생활도구인 석제품, 마제석촉, 방추차 등이 있다.
이 유적은 유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발굴 자체도 소규모의 조사에 그쳐 조영연대를 비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그러나 이 일대에서 생성된 민무늬토기문화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대단위 취락의 형성보다는 소규모의 취락이 곳곳에 점재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