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부여군 공설운동장 조성 중 백제고분이 노출된 것을 계기로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는 야산 일대 3만여 평 대상 부지 중 서편 능선을 중심으로 약 5,000평에 대해서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1차 수습조사에서 확인된 백제고분 12기를 포함해 모두 60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고분은 야산 서편 구릉 일대에 고르게 밀집 분포되어 있었다. 대부분 과거에 도굴된 예가 많으며 채석이나 자연훼손 등으로 석재가 유실된 예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고분의 방향은 대체로 이 산 등고선과 직교되는 남북향이다. 고분의 종류는 백제 석실분 54기, 옹관묘 4기, 토광묘 2기이다. 이 중 토광묘는 분청사기, 청동수저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유구였다.
석실분의 유형은 현실의 단면으로 볼 때, 6각형, 조임형, 제형(梯形), 4각형으로 구분된다. 또한 축조재료로 볼 때, 판석조, 할석조, 판 · 할(괴)석 혼용의 3가지로 구분된다. 단면 6각형 횡혈식고분의 경우, 축조재료는 대부분 정교하게 물갈이한 판석을 사용하였(A형)다.
이 외에 물갈이하지는 않았으나 치석된 판석재나 네모진 괴석을 사용한 것도 있다(B형). 바닥은 대부분 소형 판석을 맞춰 깔은 예가 많다. 연도는 남벽 우측에 동편재하여 짧게 처리하였다. 대부분 배수시설을 갖추었다. 규모가 큰 합장묘가 많으며, 제36호분의 경우에는 사비시대 귀족의 부부합장묘로 조사되었다.
할석과 판석 또는 괴석을 혼용한 조임형의 고분은 3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순수할석만을 맞춰 쌓아 점차 내경시켜 상부에 수 매의 대판석을 덮은 형식(C형), 네모진 괴석을 1-2단 쌓고 그 위로 소형 괴석 또는 할석을 좁혀 쌓은 형식(D형), 판석을 세워서 쌓은 후 할석 또는 괴석을 점차 좁혀 쌓은 형식(E형) 등이 있다.
이 중에는 별도의 연도를 내지 않고 규모가 작은 중 · 소형의 횡구식고분이 많다. C형의 경우는 사비시대 전에 유행한 궁륭형석실분의 후행 양식으로 판단된다. 제형 고분은 할석을 양측면에서 좁혀 쌓아 단면 사다리꼴이 되도록 한 소형의 횡구식 유형(F형)이다. 단면 4각형 고분은 판석조이면서 별도의 괴임석 없이 평천정으로 축조하였다(G형).
고분의 묘광배치상 특징적인 것은 묘광을 깊이 파고 그 내부에 석실을 안치한 예가 많은 점이다. 깊은 것은 묘광 어깨선으로부터 2m가 넘고, 특히 판석조의 6각형 횡혈식고분의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고분유형 중에는 남북방향의 석실분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부부합장묘와 같은 쌍분으로 여겨진다.
또한 제45호분은 묘곽 남쪽 경사진 곳에 축대를 할석으로 3단 시설해 묘역을 조성하였다. 묘광 바닥에는 배수로를 남쪽으로 길게 낸 경우가 많다. 특히, 제58호분의 경우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묘광 남쪽을 별도로 좁게 파고 들어간 뒤, 바닥에 소형 할석을 덮은 배수로를 L자형으로 약 11m 되게 시설하였다.
옹관묘는 모두 4기가 확인되었다. 구조가 확인된 것은 주로 대형의 주옹과 소형의 막음옹을 사용한 합구식(合口式)에 횡치한 상태이다. 제46호분의 경우는 호의 저부를 맞댄 합저식(合底式)이어서 특이한 예에 속한다.
유물로는 각 고분에서 고루 출토된 관정, 관고리 이외에 순금제이식 1점(제32호), 금동제이식 1쌍(제49호), 은제관모장식(제36·44호), 은제요대장식 및 수식(제36· 44·50호) 등이 있다. 그리고 토광묘에서 출토된 청동수저, 동전, 분청사기완(제41호) 등이 있다.
이 외에 백제의 인골자료(제36·49·53호)가 수습되었다.
이 유적의 조사로 부여지역 백제고분의 다양한 묘제 형식이 확인되었다. 또한 백제 사비시대 귀족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어 백제 후기 문화복원에 좋은 자료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