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부고속도로 회덕-증약간 확장공사에 따른 구제발굴의 일환으로 1997년 4∼6월충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유적은 비래동의 계곡 사면 퇴적층과 이 곳에서 이어지는 구릉(해발 128m) 정상부에 있다. 발굴 조사된 유적은 총 3기의 지석묘이다.
구조형식은 개석식 지석묘이다. 가장 큰 구조적인 특징은 지석묘 축조를 위한 봉분형의 원형 성토부의 존재이다. 성토부는 계곡부의 제1.2호 지석묘에서 확인되었다. 매장주체부가 남아 있는 제1호의 경우, 층위상 성토 후 되파기한 흔적이 없어 성토와 동시에 돌덧널을 구축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 제1호 지석묘는 할석으로 벽을 구축하고 뚜껑돌을 얹었다.
고속도로 반대편의 구릉 정상부에 있는 제3호 지석묘도 할석으로 벽을 구축하고 뚜껑돌을 얹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과 동일하다. 그러나 북단벽에 조그마한 판석을 2매 다듬어 세워 놓고 성토부 없이 생토를 굴광하고 돌덧널을 구축한 점에서는 제1.2호 지석묘와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유물로는 제1호 지석묘에서 비파형동검 1점, 삼각만입화살촉 5점, 붉은간토기 1점, 제2호 지석묘에서는 붉은간토기 3점, 제3호 지석묘에서 붉은간토기 1점, 관옥 1점이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은 전체 길이가 16.9cm로 국내에서 발견된 동검 중 가장 짧은 편이다. 등대의 돌기가 보이지 않으며, 약간 비대칭적인 날의 형태, 슴베 끝부분의 V자형 마연 등을 고려할 때 재가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부 아래에는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의 특징인 홈이 있다.
이 유적은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지석묘로서는 금강유역 최초의 예로서 자료적인 가치는 매우 높다. 축조연대는 제1호 지석묘의 경우, 유물상과 C14연대를 감안할 때 인접한 신대동(新岱洞) 주거지와 평행하는 기원전 9세기, 늦어도 기원전 8세기 무렵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비파형동검문화의 중부지역으로의 파급은 기원전 9세기 무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까지 비파형동검은 주로 지석묘에서 출토되고 있고, 이 지석묘는 일련의 도작농경문화의 전개과정 속에서 축조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들 3가지 요소는 청동기문화의 전개과정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근의 신대동 주거지에서 곡물이 출토된 점을 감안하면, 이 지석묘는 공렬토기문화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도작농경이 막 시작되는 무렵에 축조된 초기형의 지석묘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