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방동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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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방동패총
범방동패총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널무덤 · 화덕자리 등 관련 조개더미.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널무덤 · 화덕자리 등 관련 조개더미.
개설

범방동 조개무지는 1991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남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은 부산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한 유명한 김해 수가리 패총으로부터 남으로 1㎞ 떨어져 있고,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김해시로부터는 8㎞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내용

패총은 낙동강 하구의 금병산 말단부인 저구릉의 남사면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퇴적범위는 길이 100m, 너비 30∼40m 정도에 이른다. 현재 유적 주위에 패층이 노출되어 있으며 유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유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인 퇴적상태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모두 24개 층위에서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유구로는 무덤 1기, 원형의 불땐자리, 원형 집석유구 7기 등이 발굴되었다.

1991년 부산시립박물관의 조사를 토대로 H피트를 포함하면 모두 16개 층위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패각층은 13층에서부터 시작되며, 문화층으로는 최하층인 13층에서 7층까지는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를 표지로 하는 신석기 조기 문화층이다. 층위와 출토유물의 특징에 따라 Ⅰ기층(13-12층)과 Ⅱ기층(11-7층)으로 크게 대별된다. 6∼4층은 패총 형성 당시에 교란되었던 층위로 혼토패층(混土貝層)을 이룬다.

여기서 신석기시대 조기의 융기문토기를 비롯해 자돌압인문토기(刺突押引文土器), 빗살무늬토기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현재의 편년으로 보아 4개의 문화층 유물이 혼재해 있는 상태이다. H피트 Ⅰ∼Ⅶ층은 남해안지역의 전형적인 침선문토기(沈線文系土器)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층으로 혼토패층과 순패층이 교대로 퇴적되어 있다. 3층은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2층은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가 중심을 이루는 순패층이 전피트에 고루 형성되어 있다.

범방동 조개무지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토광묘 1기, 노지(爐址) 8기이다. 토광묘는 B피트 12층 아래에서 검출되었다. 토광 내부에서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인골이 확인되었다. 시신은 신전장 형태이나 다리부분이 X자형으로 꼬여져 있는 상태이다. 인골의 신장은 130∼140㎝, 나이는 11∼12세 정도이나 성별은 불명이다. 부장품으로는 골각기와 연옥제 목걸이 장식이 각 1점씩 출토되었다.

골각기가 왼쪽 어깨부분에 배치되어 있는 점이 다소 특이하다. 노지는 내부구조에 따라 집석로(集石爐)와 위석로(圍石爐)로 구분된다. 형태는 직경 10∼20㎝ 크기의 할석 또는 천석을 1∼2벌 원형으로 깔거나 돌려 만들었다. 규모는 50∼160㎝ 정도이다. 모두 패층 위에 설치되었으며 화기로 붉게 변해 있다. 내부에는 탄화된 유기질과 숯가루가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당시에 모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은 다량의 즐문토기를 비롯해 석기, 골각기, 자연유물 등이 있다. 즐문토기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편년되는 조기의 융기문토기, 붉은간토기와 전기의 자돌·압인문토기, 중기의 침선문토기, 후기의 퇴화침선문토기, 만기의 이중구연토기 등 매우 다양하다. 기형은 대부분 발형을 이루고 있으나 동체가 굴곡하는 굴곡형토기도 다소 존재하고 있다.

석기는 마제·타제석부, 석족, 지석, 갈돌, 갈판 등과 다량의 흑요석박편이 출토되었다. 이 중에서 석촉은 흑요석으로 만든 것도 있으며, 형태는 삼각형을 이룬다. 이 밖에 오산리형으로 불리는 결합식낚시도 다소 출토되었다. 석축뿐만 아니라 골제의 바늘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 결합식낚시는 공반유물로 보아, 오산리 유적 출토품보다 빠른 것으로 추정되며, 결합부의 형태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범방동 조개무지는 신석기시대 조기(早期)부터 만기(晩期)에 걸쳐 다양한 유물이 검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수천년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범방동 조개무지의 형성연대는 서기전 5000∼서기전 2000년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범방동 조개무지의 발굴조사로 지금까지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았던 지두문토기(指頭文土器)와 세침선문토기, 세침선문과 융기문토기와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는 자료를 얻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범방동 조개무지는 한반도 신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일 신석기문화의 교류실상 규명에도 일조(一助)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문헌

『한국의 조개더미 유적』1·2(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의회, 2010)
『한국 신석기문화의 원류와 전개』(이동주, 2007)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신동향』(이상균, 2005)
『한반도 남부지역 즐문토기 연구』(하인수, 2005)
『범방패총』Ⅱ(하인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7)
『범방패총』|(하인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3)
「한국 신석기시대 묘제의 검토」(유태용, 『백산학보』8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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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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