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노대도 패총은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석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패총은 상노대도의 상리마을과 산등마을에 각각 분포하고 있다. 상리패총은 신석기시대 조기에서 말기의 유적으로 다양한 생활도구와 각종 동물뼈가 출토되어 주거를 위한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산등패총은 신석기시대 후·말기 유적으로 분묘와 인골 등이 나와 임시캠프나 무덤 등으로 추정된다. 이 인골과 분묘는 도서지역의 묘제와 장례습속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상리패총에서 나온 일본의 흑요석제 석기, 승문토기 등은 남해안과 일본의 교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다.
상리조개더미는 남해안 신석기시대 조기(서기전 5,000년 전후)부터 말기(서기전 2,000년 전후)까지 장기간에 걸쳐 존속했던 유적이며, 연세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 의해 발굴되었다. 유적의 입지 환경과 출토유물, 동물유존체의 양상으로 보아 어로와 수렵을 통해 식량자원을 조달하고 생계를 영위했던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로는 다양한 문양이 시문된 즐문토기(櫛文土器: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각종 석기, 골각기,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산등조개더미는 유적의 입지 환경과 한정된 유물의 종류, 패각층 내의 집석유구(集石遺構)로 보아 어패류 등 해양자원을 획득하고 조리하던 한정행위 장소인 임시 캠프로 추정되며, 일시적으로는 매장지로도 이용되었다. 유적의 중심 시기는 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후 · 말기(서기전 2,500~2,000년)로 추정된다. 유물은 전기에서 말기에 걸치는 즐문토기와 석기, 조개팔찌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상리조개더미는 통영시에서 서남방으로 32㎞ 떨어진 상노대도 상리마을의 남쪽 해안가에서 5~10m 정도 떨어진 완사면에 자리한다. 여기서 서북쪽으로 4㎞ 떨어진 곳에는 산등조개더미가 있다. 상리조개더미는 동아대학교 사학과 김동호 교수가 남해안지역 지표조사 과정에서 발견하였으며, 감귤 재배와 경작 등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이다. 발굴 조사는 1978년 연세대학교와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공동으로 4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1·4지구는 연세대학교에서, 2·3지구는 동아대학교에서 담당하였다.
2·3지구의 조개더미는 지점에 따라 층위를 달리하지만 크게 보아 5개 층으로 구분된다. 각 층에서는 조기의 융기문(隆起文)토기와 다양한 문양이 시문된 전기의 자돌문(刺突文), 압인횡주어골문(押引橫走魚骨文), 격자문, 구순각목문(口脣刻目文)토기 등의 영선동식토기가 출토되었다. 퇴적 층위는 불안정한 면도 있지만, 크게 하층(5·6층)의 조기 융기문토기 문화층과 상층(3·4층)의 전기 영선동식토기 문화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변에서 말기의 이중구연(二重口緣)토기와 단사선문(短斜線文)토기가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유적의 존속기간은 말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2·3지구에서는 즐문토기 이외에 긁개, 밀개, 인기(刃器) 등 다량의 박편석기류를 비롯한 고석(敲石), 대석(臺石), 숫돌, 석부, 몸돌, 수정제 석기, 흑요석 편 등이 출토되었다.
연세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1·4지구의 조개더미는 표토층을 제외한 10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각 층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유물이 혼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출토유물의 형식적인 특징과 퇴적 양상으로 보아 3개의 문화층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최하층인 10층은 토기가 출토되지 않고 박편과 타제석기류만 출토되어 신석기시대보다 이른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1문화층(9층)은 융기문토기를 표지로 하는 시기이며, 2문화층(58층)는 영선동식토기, 3문화층(24층)은 이중구연토기와 단사선문토기 등 율리식토기가 중심을 이루는 시기이다.
출토유물로는 남해안의 전형적인 즐문토기를 비롯하여 각종 석기, 골각기, 패제품, 동물유존체 등이 있다. 즐문토기 종류는 남해안지역의 조기에서 말기에 걸치는 융기문토기, 압인문(押引文)토기, 태선침선문(太線沈線文)토기, 압인점열문(押引点列文), 조우문(鳥羽文), 격자문, 파상문(波狀文)토기, 이중구연토기, 단사선문토기 등이 있으며 이밖에 일본의 승문토기(繩文土器) 등도 출토되었다.
석기는 박편석기, 유견(有肩)석기, 몸돌석기, 조합식작살, 인부마연석부, 반환형 장신구, 갈돌, 갈판, 고석(敲石), 숫돌, 흑요석제 석기 등이 있으며, 골각기는 그 양이 많지 않고 종류도 단순한 편이다. 고라니 이빨로 만든 수식, 결합식낚시바늘, 골침, 첨두기, 자돌구, 송곳과 일본 구주(九州)지역 승문(繩文)문화의 특징적인 서북구주형 낚시바늘이 출토되었다. 패제품으로는 배말조개와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팔찌와 국자가리비, 말전복 등을 가공한 장신구 등이 있다. 이들 유물 중 조합식작살과 결합식조침, 흑요석제 석기, 승문토기는 당시 남해안과 일본 구주지역과의 교류 관계를 직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이밖에 멧돼지, 고라니, 사슴, 수달, 여우, 취, 개, 고래, 물개, 바다사자, 바다거북, 새, 참수리, 까마귀, 가마우지, 슴새, 가오리, 곰치, 농어, 참돔, 졸복, 굴, 홍합, 소라, 개조개, 눈알조개 등 육상 및 해양 포유류와 각종 어패류가 출토되었다. 9층에서는 45세 가량의 사람 어금니도 검출되었는데, 분석 결과 육식과 채식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상리조개더미는 주거지를 비롯하여 생활 시설물 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패각층에서 출토된 다양한 생활도구와 각종 동물유존체 등으로 보아 장기간에 걸쳐 어로와 수렵활동을 통해 식량자원을 조달하고 생계를 영위했던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조개더미는 토기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미루어 신석기 조기(서기전 5,000년 전후)부터 말기(서기전 2,000년 전후)까지 장기간에 걸쳐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등조개더미는 노대리 산등마을의 끝에 돌출하여 작은 반도 형태를 이루는 언덕 위에 자리하며, 앞면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조개더미에서 동남쪽으로는 4㎞ 정도 떨어진 곳에 상리조개더미가 위치한다. 유적이 입지하는 곳은 해발 10m 정도의 작은 구릉이며 규모는 길이 70m, 너비 20m 정도이다. 유적 범위는 상당히 넓은 편이였으나 후대의 경작 등으로 훼손된 상태이다.
발굴조사는 2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여기서 확인된 퇴적층은 표토층을 포함하여 흑회색혼토패층(2층), 회색혼토패층(3층), 순패층(4층), 흑회색혼토패층(5층), 다갈색점토층(6층)으로 구분된다. 층위 상태는 다소 불안정하며 동일층에 시기를 달리하는 토기형식이 출토되는 양상으로 보아 퇴적 과정에 다소 교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층 내에서는 분묘 1기와 집석유구 6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각층에서 즐문토기, 석기, 조개팔찌, 인골 등이 출토 되었으며, 그밖에 어패류, 동물유존체 등도 다수 출토되었다. 즐문토기는 여러 시기의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유사융기문토기, 영선동식토기, 단도마연(丹塗磨硏)토기, 태선침선문토기, 단사집선문(短斜集線文)토기, 삼각집선문토기, 봉계리식의 점열문, 유충문(幼蟲文), 조우문토기, 퇴화침선문토기, 단사선문토기, 능형문(菱形文)토기 등이 있다. 석기 종류는 타제석부, 인부마연석부, 석인(石刃) 석착(石鑿), 갈돌, 지석, 박편석기 등이 있으며, 그밖에 부장품으로 조개팔찌가 인골과 함께 출토되었다
자연유물은 패류, 어류, 수골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패류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패류는 굴, 홍합, 전복소라, 삿갓조개, 고둥, 투박조개, 개조개 등이 있다. 이외에도 고래, 사슴, 어류 뼈도 소량 출토되었다.
유구는 분묘 1기와 집석유구가 1·2지구에서 여러 기 확인되었다. 분묘는 2지구 3층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매장 형태는 신전장(伸展葬)이며, 머리 방향은 동침(東枕)이다. 인골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13~15세의 여성으로 추정되었다. 인골 왼팔에는 3개의 조개팔찌가 착장되어 있는데, 2점은 투박조개, 한 점은 큰배말조개로 만든 형식이다. 팔찌 크기는 내경이 5㎝ 정도이다. 조개팔찌가 인골에 착장된 채로 출토된 최초의 사례이다. 최근에는 여수 안도와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조개팔찌를 착용한 인골이 확인되고 있다.
집석유구는 1, 2지구에서 확인되었는데, 1지구의 것은 규모가 직경 165130㎝ 정도이며 서로 인접해 축조되어 있다. 2지구 3층에서 출토된 집석유구는 형태가 명확하지 않으나 그 범위는 대략 길이 350㎝, 너비 150㎝ 정도이다. 집석유구는 20㎝ 크기의 소형 할석을 12벌 깔아 만든 형태인데, 구조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룬다. 용도는 어패류 등의 음식물을 조리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등조개더미는 일부만 조사하였기 때문에 유적의 성격이나 범위, 존속기간 등은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조개더미의 입지, 출토유물의 종류와 다양성 등으로 보아 주거를 위한 생활공간보다는 어패류 등 해양자원을 획득하고 조리하던 한정행위 장소인 임시 캠프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패각층 내에서 출토된 인골로 보아 일시적으로는 매장지로도 이용된 것 같다. 유적의 형성 시기는 토기의 형식적 특징으로 보아 신석기 전기중기까지 올라가지만, 중심 시기는 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후 · 말기(서기전 2,5002,000년) 로 추정된다.
상리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다양한 형식의 즐문토기와 각종 석기, 골각기, 동물유존체 등은 남해안 도서지역의 신석기문화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도서지역의 신석기인 생계와 생업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일본 승문문화와 관련한 조합식 작살과 결합식 조침, 흑요석제 석기, 승문토기 등은 남해안과 일본 구주지역과의 교류 관계와 그 실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산등조개더미에서 발굴된 분묘와 인골은 도서지역의 묘제(墓制)와 장례습속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학술 자료로 평가되며, 완전한 형태의 인골은 신석기인의 형질적인 특징을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