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초기부터 멸망기까지 있었던 관등의 하나로, 실원(失元) 또는 서인(庶人)이라고도 한다. 선인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고구려조이다. 이 기록에는 총 10개의 관등(직) 이름이 나오는데 선인은 마지막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의하면 고구려 국왕의 휘하에만 선인을 두었던 것이 아니라, 국왕 아래의 여러 족장(族長)층인 대가(大加)들도 스스로 선인을 두었고, 그들의 명단을 국왕에게 알린다고 하였다. 즉 대가 밑에도 직속 관원인 선인을 둘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대가 휘하의 선인은 국왕이 임명한 선인과 명칭은 같지만, 함께 모여 있을 때에는 국왕의 선인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갖추면서 정치적으로 일정한 독자성을 지니고 있던 대가들은 대부분 중앙의 관료로 편입되었고, 행정 시스템과 관등제도도 국왕을 중심으로 일원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반영된 6~7세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들에서도 선인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주로 고구려의 최하위 관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우선 『주서(周書)』와 『수서(隋書)』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6세기 고구려 관등제도의 기본 구조는 13등급이었으며, 최상위는 대대로(大對盧), 최하위는 선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등제의 대략적인 모습은 7세기까지도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예컨대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라는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최고위 관등은 대대로, 최하위 관등은 선인으로 나와 있다. 또한 고구려 말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천남생묘지명(泉男生墓誌銘)』과 천남생 아들 『천헌성묘지명(泉獻誠墓誌銘)』에서도 이들 부자가 최초로 수여받은 관직은 각각 9세에 역임하였던 선인 관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고구려의 귀족 자제가 관직 경력을 처음 시작하면서 받는 최말단의 관등이 바로 선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