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구려 제1위의 관등으로서 국정을 총괄하는 임무를 지닌 고구려의 수상직.
내용
6세기 후반 고구려의 왕권이 약화되면서 정치적 실권이 대폭 강화되었다. 이 시기 대대로 선임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귀족들의 상쟁이다.『한원(翰苑)』고려기(高麗記)에 의하면 귀족 중에서 서로 싸워 가장 강한 자가 스스로 대대로가 되었다. 이 때 왕은 귀족 간의 분규에 간여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후기에 대대로가 고구려 최고의 실권자가 되었으며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대대로는 태대형(太大兄)·울절(鬱折)·태대사자(太大使者)·조의두대형(皂衣頭大兄)과 함께 국가의 기밀을 맡고 정사를 도모하며, 병정을 징발하고 관작을 주었다. 그리고 이 5관등을 가진 자만이 고구려 최고의 무관직인 대모달(大模達)에 임명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고구려 사회에서 고위 귀족관료에 의한 합좌제도(合坐制度)가 시행되었고, 이들이 고구려 최고의 신분계급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편, 고구려 말에는 막리지(莫離支)가 최고의 실력자로 등장하는데, 막리지는 바로 이 대대로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제2품계인 태대형이 실권을 장악하고 통치하면서 막리지라는 별명(別名)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 경우 대대로는 다수의 막리지들이 서로 합의 내지 상쟁하여 차지하는 최고의 막리지로 보기도 한다. 어떤 견해든 대체로 대대로와 막리지는 고구려 후기의 최고의 정치적 실권자이며, 밀접한 관계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 『주서(周書)』
- 『한원(翰苑)』
- 『고구려 정치사 연구』(임기환, 한나래, 2004)
- 「귀족연립정권의 성립」(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1999)
- 「고구려국상고(高句麗國相考)상(上)·하(下)」(노중국, 『한국학보(韓國學報)』16·17, 1979)
- 「고구려·신라(高句麗·新羅)의 관계조직(官階組織)의 성립과정(成立過程)」(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1956 ;『한국고대사회연구(韓國古代社會硏究)』, 지식산업사(知識産業社), 1975)
-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武田幸男, 『朝鮮學報』86,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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