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창(淳昌). 초명은 설진삼(薛鎭三).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 또는 율재(栗齋). 아버지는 통정(通政) 설상기(薛相基)이며, 어머니는 탐진최씨(耽津崔氏)로 최덕순(崔德淳)의 딸이다.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광선(高光善) · 박인섭(朴寅燮) 등과 교유하였다.
1895년(고종 32)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기우만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장성 · 나주 등지에서 왜병과 싸웠다. 1910년 국권강탈을 당하자 아미산(峨嵋山) 남쪽 기슭에 남파서실(南坡書室)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심혈을 경주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다.
1940년 일제가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여 맹세코 성을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시(絶命詩) 2절과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 이산묘영광사(駬山廟永光祠)에 충의열사 33인과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로 『남파유고(南坡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