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성안지곡(成安之曲)」은 고려시대에 주1과 주2 제례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登歌)가 각각 ‘태주궁(太蔟宮)’과 ‘협종궁(夾鍾宮)’으로 연주하였던 아악곡이다. 선농과 문선왕묘의 작헌악(酌獻樂)으로 「성안」이란 곡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송 인종 경우(景祐) 원년인 1034년부터이다. 송대에는 아악곡의 이름에 ‘안(安)’자를 돌림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름 뒤에 ‘~지악(之樂)’을 붙였다.
고려시대의 「성안지곡」은 송대의 ‘안’자 돌림을 사용했지만 곡 이름 뒤에 ‘~지곡(之曲)’을 붙임으로써 송대의 「성안지악(成安之樂)」과 다르게 되었다. 곡 이름 뒤에 ‘~지곡’을 붙인 시기는 원대로서 근 100년의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원대의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는 곡 이름을 송대의 방식을 따라 「성안지악」으로 칭하였다. 태종대에 선농의 초헌악명이 「수안지악(壽安之樂)」으로 바뀌고, 「성안지악」은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명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이후 세종대에 신제아악(新製雅樂)이 마련된 뒤로 고려 전래의 기존 아악이 폐기됨에 따라 「성안지악」 역시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기존의 협종궁에서 남려궁(南呂宮)과 고선궁(姑洗宮)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의 144곡에 달하던 신제제사아악은 이후 성종대의 문헌인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와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 15곡으로 축소되어 나타났는데, 그 15곡 가운데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의 삼헌악 「성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따라서 삼헌악 「성안지악」의 남려궁과 고선궁은 세종대 신제제사아악 ‘황종궁1’의 남려궁과 고선궁에 해당한다.
조선 전기 문선왕묘 제례에서는 초헌 절차에 문무인 「열문지무」와 함께 등가가 남려궁 「성안지악」을, 아헌・종헌에 무무인 「소무지무」와 함께 헌가가 고선궁 「성안지악」을 연주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이후로 변함없이 유지되어 현행 문묘제례의 삼헌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