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한때(20세기초) 옛 정의(旌義: 지금의 성읍) 고을의 여인숙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도 주민들이 ‘여관집’으로 부르는 이 집은 정의향교(旌義鄕校)와 이웃하여 동향(東向)하고 있다.
이 집은 큰길에서 ‘올래길(큰 길에서 집 대문에 이르는 막다른 골목길)’을 따라 들면 대문(이문)과 ‘정낭(집 입구에 긴 막대기 두세 개를 정주석 또는 정주목에 걸쳐 주인의 부재를 표시하는 대문으로 제주도 특유의 시설)’없이 바로 집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되어 있다.
안채(안거리)는 마당을 앞에 두고 동향하고 있으며, 헛간채는 안채의 맞은편에 서향(西向)하고 있다. 안채의 뒤쪽에는 넓은 텃밭(우영)이 일구어져 있고, 수목들이 안채를 감싸듯 배경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앞 우측에는 돼지우리와 함께 있는 재래식변소(통시 · 뒷간 · 돝통)가 있으며, 집 입구에는 개량식 변소가 있어 좋은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안채는 한라산 산남(山南)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3칸 집이다. 안채의 중앙에 대청마루(상방)가 있고, 대청마루의 좌측에 부엌(정지)과 작은방(작은구들)이 있다.
우측에는 안방(큰구들)과 고방(고팡)이 각기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안방과 작은방에는 ‘굴묵(방의 난방을 위하여 불을 때는 곳)’이 있으며, 대청마루와 안방의 전면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난간)가 설치되어 있다. 대청마루 앞의 두 문은 모두 쌍여닫이널문으로 우측 문에만 머름을 들여 좌측 문(상방의 주출입문)보다 작은 ‘호령창(생깃문)’을 설치하였다.
호령창은 주인이 일꾼을 부르거나 바깥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 이용하는 것으로 내륙의 되창과 용도가 유사하다. 부엌 앞에는 ‘물구덕(식수를 등에 져서 길어 나르는 허벅이라는 물동이를 넣는 바구니)’을 얹어두는 ‘물팡(좌우로 벌려 세운 2개의 기둥돌 위에 넓적 돌을 가로 얹은 것)’이 있다.
헛간채는 통칸으로 예전 멍석이나 ‘남방애(통나무로 만든 제주도 특유의 절구)’ 등을 두었던 곳이다. 이 집은 한때 여관으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조된 부분이 없이 한라산 산남의 단출한 재래농가의 가옥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