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 마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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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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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후기 바깥채 · 안채 · 창고 등으로 구성된 주택. 객주집. 국가민속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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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조선후기 바깥채 · 안채 · 창고 등으로 구성된 주택. 객주집. 국가민속문화재.
내용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지금의 성읍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옛 정의(旌義: 지금의 성읍) 고을의 객사(客舍)와 이웃하여 있던 객주집이다. 18세기말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북쪽의 영주산(瀛州山)을 진산(鎭山)으로 남쪽의 남산봉(南山峰)을 안산(案山)으로 삼은 성읍 마을의 중심가에 있는 성읍초등학교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위치하여 남향(南向)하고 있다.

이 집이 마을의 요지에 배치되었기 때문인지 서쪽 돌담에 “참봉이기선휼궁비(參奉李奇善恤窮碑)”라 쓰인 비석이 놓여 있다. 전면담의 좌측 모서리에 있는 대문간(이문간)을 들어서면 바로 우측에 바깥채(밖거리)가 있다.

바깥채의 맞은편에 안채(안거리)가 있고, 안채 앞의 마당 좌우측에는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가로놓인 집채인 모커리와 창고가 있다. 이들 다섯 채의 건물은 모두 一자형으로 마당을 중심하여 튼ㅁ자형을 취하고 있다. 대문간은 3칸으로 중앙에 중턱대문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3칸 집으로 중앙에 대청마루(상방)가 있고 대청마루의 좌측에 부엌(정지)과 작은방 (작은구들)이 있다. 그리고 우측에 안방(큰구들)과 고방(고팡)이 각기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안방과 작은방에는 ‘굴묵(방의 난방을 위하여 불을 때는 곳)’이 있으며, 대청마루와 안방의 전면에는 반 칸 폭의 툇마루(난간)가 설치되어 있다.

툇마루 상부의 서까래 앞에는 각목(角木)으로 뼈대를 짠 위에 새[茅: 억새]를 얹은 ‘풍채(비바람이 칠 때 내려서 비바람을 막고, 볕이 날 때 올려서 땡볕이 방에 드는 것을 막는 시설물)’가 두 개의 지지목 상부 가지 사이에 걸쳐 있다.

바깥채는 안채의 평면구성과 유사하다. 다만 안채에 있는 작은방과 툇마루를 배설하지 않은 것이 다를 뿐이다. 바깥채에는 재래 농기구인 쟁기와 마소에 물을 먹이던 돌구유가 마당구석에 남아 있으며, 예전 객주집일 때 사용된 돈궤가 보관되어 있다.

창고는 원래 조일훈의 조부가 지은 ‘말방애[硏子磨: 마소로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큰 매]’가 있었던 곳이다. 제주도의 민가에서 말방애를 설치하였던 것은 드문 예인 바, 예전 이 집이 독농가(篤農家)(농사일에 부자런하고 연구적인 집)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은 여느 제주도 민가처럼 벽체를 현무암의 자연석으로 난층쌓기를 하거나 대나무 또는 잔가지를 새끼(서슬노)로 엮은 뒤 ‘시클흙’을 발랐다. 상부 가구(보·도리·서까래 등)를 비교적 왜소한 목재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새를 손으로 고루 펴서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로 꼰 줄(새끼줄)로 그물처럼 떠서 덮었다. 이 집은 성읍 마을의 중심가에 있는 전형적인 민가일 뿐만 아니라, 예전 독농가로서의 시설과 민구(民具) 등 살림살이가 잘 갖추어진 유구라 하겠다.

참고문헌

『한국의 주거민속지』(김광언, 민음사, 1988)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 상-(문화재관리국, 1985)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제주도편-(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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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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