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만취(晩翠). 경상북도 상주 출신. 어려서부터 고향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1908년김천의 계산측량학교(稽山測量學校)를 졸업한 뒤 측량업에 종사하였다.
1911년광신학숙(廣新學塾)에서 2년간 교육에 진력하다가 1913년에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였다. 다음해에는 몽강현(濛江縣)에 신창소학교(新昌小學校)를, 1916년에는 화전현(樺甸縣)에 길창소학교(吉昌小學校)를 세우고, 1919년에는 무송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1년 대종교를 신봉하여 1924년 참교(參敎), 1931년에 지교(知校), 1947년에는 정교(正敎)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그동안 1922년부여현(扶餘縣)에 삼성시교당(三成施敎堂)과 삼흥학교(三興學校)를, 1926년빈현(賓縣)에 신흥소학교(新興小學校)를, 1929년유수현(楡樹縣)에 유성시교당(裕成施敎堂)과 부속소학교를 각각 설립하여 직접 시무하였으며, 총본사(總本司) 전범(典範), 밀산구(密山區) 순교원(巡敎員), 총본사 전강(典講), 경의원(經議院)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도 총본사 전범, 원로원 부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57년 상주지사(尙州支司) 전무(典務)가 되어 활동하였다. 1958년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1977년 생전의 공적으로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