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장기리 암각화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
이칭
이칭
양전동 암각화, 알터〔卵峴〕 암각화
유적
건립 시기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높이
3m
소재지
경상북도 고령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76년 08월 06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고령군 아래알터길 15-5 (대가야읍)
내용 요약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
개요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 場基里 巖刻畵)는 경상북도 고령군의 한 마을에서 발견되었으며, ‘양전동 암각화’ 또는 ‘알터〔卵峴〕 암각화’라고도 한다. 1971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으며,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1는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폭 6m의 나지막한 바위면 안에 대략 높이 1.5m, 폭 5m에 걸쳐 새겨져 있다.

형태와 특징

암각화의 그림은 동심원(同心圓)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기하학적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동심원은 세 겹으로 되어 있으며 지름 약 18∼20㎝이다. 모두 4개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이 중앙부에 배치되었고, 나머지는 왼쪽과 오른쪽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가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무늬가 17개 이상 있으며, 작은 것은 22×20㎝, 큰 것은 30×40㎝이다. 위와 좌우의 가장자리에 털, 그 안쪽에 귀 · 눈 · 코 · 입처럼 보이기도 하는 구멍과 좌우로 뻗어 올라간 뿔이 표현되어 있어, 마치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또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청동기 중 하나인 ‘칼손잡이모양청동기〔劍把形銅器〕’와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사각형 안에 둥근 점이나 ‘十’ 자 모양의 무늬를 넣은 것도 있다.

이와 같은 무늬로 구성된 암각화는 하나의 동심원과 이것을 둘러싼 여러 개의 가면 무늬 등이 하나의 무리를 이루며, 전체적으로는 이러한 무리가 3개로 이루어진 구성을 보인다. 이 무늬들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가면 무늬에 대해서는 얼굴이나 칼손잡이 외에 방패나 주2주3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는 견해도 있으며, 특히 동심원은 일반적으로 태양 혹은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이 암각화가 있는 곳은 신앙적 · 주술적인 성격의 제단, 태양신에게 올리는 농경 제사의 장소로 미루어 짐작되기도 한다.

출토 유물의 성격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면과 이어지는 언덕 위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채집되었다. 토기는 원형덧띠토기〔圓形粘土帶土器〕 · 삼각형덧띠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 굽다리토기〔豆形土器〕 · 쇠뿔모양손잡이〔牛角形把手〕 등으로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며, 연대는 대체로 서기전 5∼4세기에서 서기전 1세기의 이른 시점에 해당한다.

석기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간돌도끼〔磨製石斧〕를 비롯하여 쇠뿔모양석기〔牛角形石器〕와 숫돌〔砥石〕 등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쇠뿔모양석기는 간석기가 아닌 뗀석기이며, 길이 17∼24㎝에 양 끝이 뾰족한 반달 모양이다. 이 특이한 모양의 석기는 아직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다른 유적에서는 출토되지 않고 있어 이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덕에서 채집된 유물에 의해 고령 장기리 암각화도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암각화의 주요 무늬인 동심원은 그 이전인 청동기시대의 고인돌〔支石墓〕이나 선돌〔立石〕에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제작 ·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의 검파형 암각화』(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2016)

논문

강봉원, 「고령 장기리 암각화 고찰: 고고학적 맥락을 중심으로」(『한국암각화연구』 21, 한국암각화학회, 2017)
전호태, 「고령 장기리암각화 연구」(『한국고대사연구』 88, 한국고대사학회, 2017)
임세권, 「한국 암각화에 나타난 태양신 숭배」(『한국암각화연구』 1, 한국암각화학회, 1999)
이상길, 「패형암각의 의미와 그 성격」(『한국의 암각화』, 한국역사민속학회, 1996)
임세권, 「한국 암각화의 원류」(『한국의 암각화』, 한국역사민속학회, 1996)
한형철, 「영일 · 경주 지역의 암각화」(『한국의 암각화』, 한국역사민속학회, 1996)
송화섭, 「한반도 선사시대 기하문암각화의 유형과 성격」(『선사와 고대』 5, 한국고대학회, 1993)
이은창, 「고령양전동암각화조사약보」(『고고미술』 112, 한국미술사학회, 1971)
윤용진, 「고령 개진면 양전동 선사유적에 대하여」(『고고미술』 7-1, 고고미술동인회, 1966)
주석
주1

바위, 단애(斷崖), 동굴의 벽면 따위에 칠하기, 새기기, 쪼기 등의 수법으로 그린 그림.    우리말샘

주2

샤머니즘에서, 신령ㆍ정령ㆍ사령(死靈) 따위와 영적으로 교류하는 능력을 가지며, 예언ㆍ치병(治病)ㆍ악마 퇴치ㆍ공수 따위의 행위를 하는 사람. 본디 시베리아에 사는 퉁구스족의 종교적 지도자를 이르는 용어이나, 북미 인디언의 주의(呪醫)나 우리나라의 무당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개 황홀경의 상태를 동반하여 영적 교류를 하며, 이들의 영혼은 영적 세계로 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3

신령을 상징하는 신성한 물체.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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