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지무덤

선사문화
개념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
이칭
이칭
집석묘(集石墓), 집석유구(集石遺構), 적석유구(積石遺構), 적석총(積石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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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정의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
개요

돌무지무덤신석기시대의 다양한 매장 방식 가운데 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적석총(積石塚, Burial cairn), 집석묘(集石墓), 집석유구(集石遺構), (원형) 적석유구(積石遺構)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의 돌무지 시설로는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도 있지만, 이것은 주로 돌을 한 벌 정도 깔고 규모도 작은 편이어서 무덤으로 이용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돌무지무덤은 산돌이나 강돌 및 다듬은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것으로, 특정 부분에 토기편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거나 인골이 확인되기도 하여 무덤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관련 유적과 특징

돌무지무덤의 대표적인 유적과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부산금곡동패총]에는 3.5×1.5m 범위로 경사진 지면을 편평하게 다듬은 후 진흙을 깔고 다듬은 돌을 1∼3단으로 놓은 다음 둥근 돌을 2∼3단으로 쌓았다. 돌무지 아래에 무덤방은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쌓은 돌과 그 속에서 많은 토기편들이 출토된 점에서 무덤으로 파악되었다.

김해예안리고분군에서도 평면 원형의 돌무지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돌을 두 단 및 일곱 단으로 쌓은 것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큰 돌을 돌렸다.

통영연대도패총 및 통영 욕지도패총 유적에서도 산돌과 강돌을 깐 돌무지 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욕지도에서는 성인의 인골과 불피운 흔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인천 옹진군 시도패총에서도 지름 약 1.7m의 타원형 돌무지 시설이 확인되었다. 돌무지 사이에는 부식토와 숯이 많이 있었으며, 돌무지 아래에서는 깊이 30㎝의 구덩이도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특유의 매장 시설로서, 특히 남해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으며, 돌무지 사이의 많은 토기편 및 불피운 흔적 등은 장송 의례가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참고문헌

논문

임학종, 「신석기시대의 무덤」(『한국신석기연구』 15, 한국신석기학회, 2008)
임학종, 「남해안 신석기시대의 매장유구」(『선사와 고대』 18, 한국고대학회, 2003)
이상균, 「한반도 신석기인의 묘제와 사후세계관」(『고문화』 56,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0)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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