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매장 방식 가운데 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적석총(積石塚, Burial cairn), 집석묘(集石墓), 집석유구(集石遺構), (원형) 적석유구(積石遺構)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의 돌무지 시설로는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도 있지만, 이것은 주로 돌을 한 벌 정도 깔고 규모도 작은 편이어서 무덤으로 이용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돌무지무덤은 산돌이나 강돌 및 다듬은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것으로, 특정 부분에 토기편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거나 인골이 확인되기도 하여 무덤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돌무지무덤의 대표적인 유적과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부산금곡동패총]에는 3.5×1.5m 범위로 경사진 지면을 편평하게 다듬은 후 진흙을 깔고 다듬은 돌을 1∼3단으로 놓은 다음 둥근 돌을 2∼3단으로 쌓았다. 돌무지 아래에 무덤방은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쌓은 돌과 그 속에서 많은 토기편들이 출토된 점에서 무덤으로 파악되었다.
김해예안리고분군에서도 평면 원형의 돌무지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돌을 두 단 및 일곱 단으로 쌓은 것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비교적 큰 돌을 돌렸다.
통영연대도패총 및 통영 욕지도패총 유적에서도 산돌과 강돌을 깐 돌무지 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욕지도에서는 성인의 인골과 불피운 흔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인천 옹진군 시도패총에서도 지름 약 1.7m의 타원형 돌무지 시설이 확인되었다. 돌무지 사이에는 부식토와 숯이 많이 있었으며, 돌무지 아래에서는 깊이 30㎝의 구덩이도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특유의 매장 시설로서, 특히 남해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으며, 돌무지 사이의 많은 토기편 및 불피운 흔적 등은 장송 의례가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