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위는 표토층을 제외하고 3개층으로 나뉘어 있다. 층위별 유물의 차이는 없었다. 집자리( 집터)로 이용한 암굴 내부에서는 화덕자리〔爐址〕 3개가, 암굴 외부 동쪽에는 둥근 돌무지 유구〔積石遺構〕 4개가 발견되었다.
3개의 화덕자리 중 1개는 조개껍질층〔貝殼層〕 위에 있었고 2개는 조개껍질층 아래 생토층(生土層)에서 발견되어 서로 시기가 달랐다. 둥근 돌무지 유구는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토기 · 석기 · 장신구 등으로 양은 많지 않았다. 토기는 붉은 간토기〔丹塗磨硏土器〕편 2점 외에도 모두가 빗살무늬토기이다. 토기의 모양은 밑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위가 벌어진 V자 혹은 U자형의 심발형(深鉢形)이 대부분이다. 그밖에 항아리식토기〔壺形土器〕 몇 점과 납작바닥토기〔平底土器〕조각도 1점 있었다.
심발형토기는 곧은 아가리〔直立口緣〕와 겹아가리〔二重口緣〕의 두 종류가 있다. 곧은 아가리가 많았으며 무늬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무늬있는 것은 아주 적었다.
무늬의 종류는 빗금무늬〔短斜線文〕 · 빗점무늬〔短點列文〕 · 문살무늬(격자문(格子文)) · 점렬무늬〔點列文〕 · 사선무늬〔斜線文〕 · 톱니무늬〔鋸齒文〕 · 물결무늬( 파상문(波狀線文)) · 삼각집선무늬〔三角集線文〕 · 생선뼈무늬( 어골문(魚骨文)) 등이다. 대개 구연부 주위에만 시문(施文)되어 있고 시문수법도 조잡한 편이었다.
석기는 갈아서 만든 돌도끼 · 화살촉( 돌살촉) · 끌 · 바퀴날도끼〔環狀石斧〕 각 1점과 숫돌 3점이 있었다. 그밖에 활석제(滑石製) 타원형 장신구 1점, 자안패형(子安貝形) 토제품 1점, 타원형 토판(土板) 2점도 각각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 중 문살무늬(격자문) · 삼각집선문 · 어골문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와 빗금무늬가 시문된 붉은 간토기는 신석기시대 후기의 것이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납작바닥토기편과 간돌끌 및 화살촉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유물들은 신석기시대 말기의 것이다.
이 조개더미는 겹아가리토기의 표준유적으로서 김해 수가리 패총 제Ⅲ기, 김해 농소리 패총, 부산 암남동 패총과 함께 남해안지역 신석기 말기의 대표적인 유적 중의 하나이다.
규모는 작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암굴주거지와 이 시대 무덤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적석유구가 확인되어 신석기시대 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