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은 구릉의 정상부를 포함한 서남쪽과 동남쪽 경사면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100여 기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파괴, 도굴되어 지표면에는 유구의 흔적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이 고분군의 동쪽지역에 당평초등학교가 세워지게 되자 1981년 10∼11월 사이에 부산대학교박물관이 학교부지 내에 포함되는 고분을 발굴하였고 나머지 고분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발굴된 고분은 삼국시대의 수혈식장방형석곽묘 34기와 조선시대의 목관묘(木棺墓) 4기 등 총 38기이다.
수혈식석곽묘는 대개 판석 및 할석으로 쌓았고 돌로서 뚜껑을 덮었던 것 같다. 34기 중 1기는 별도의 부곽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머지 33기는 부곽이 없는 단독 수혈식석곽묘이다. 이 중 4기는 석곽 2개가 나란히 인접해 있으므로 2기의 다곽묘(多槨墓)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곽의 크기는 소형은 길이 20∼280㎝, 너비 50∼65㎝, 높이 60㎝ 내외, 중형은 길이 300∼340㎝, 너비 55∼80㎝, 높이 65㎝ 내외, 대형은 길이 420∼490㎝, 너비 80㎝, 높이 70㎝ 내외이다.
고분은 대개 등고선의 방향과 평행되게 설치되었으므로 축조지역에 따라 장축(長軸)방향과 두향(頭向)이 달랐다. 즉 남쪽 경사면(A지구)에 축조된 무덤은 동서향에, 두향은 동침(東枕)이고, 동쪽 사면(B지구)에 축조된 무덤은 남북향에, 두향은 남침(南枕)이었다.
출토유물은 파편을 포함해 토기류 70여 점, 철기류 100여 점 등 모두 170여 점 뿐이었다.
토기는 고배(高杯)·파수부완(把手附盌)·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원통형기대(圓筒形器臺)·발형기대(鉢形器臺)·양이부완(兩耳附盌)·파수부대부완(把手附臺附盌)·유대장경호(有臺長頸壺)·원저장경호(圓底長頸壺)·원저대호(圓底大壺)·연질호(軟質壺)·연질옹(軟質甕)·방추차(紡錘車) 등이다.
철기류는 철촉(鐵鏃)·철부(鐵斧)·철도자(鐵刀子)·철모(鐵鉾)·철겸(鐵鎌)·철대도(鐵大刀)·철검(鐵劍)·철정(鐵鋌) 등이다.
유물 중 토기류들은 모두 낙동강 동안식(東岸式)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유적의 토기가 이미 신라계 토기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분은 부산지방이 신라문화권에 포함된 뒤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묘제나 출토유물의 특징으로 보아 부산 오륜대(五倫臺)·괴정동고분과 거의 같은 성격이다.
유물의 형태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분군의 축조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중심연대는 대개 5세기 후반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묘는 장방형의 묘광(墓壙)을 파고 그 안에 목관을 설치한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묘광은 길이 210∼240㎝, 너비 70∼90㎝, 깊이 55∼70㎝이다. 장축방향은 수혈식석곽묘와는 달리, 경사면과 일치하는 남∼북향이다.
백자(白磁)·분청사기(粉靑沙器)·청동합(靑銅盒)·청동숟가락 등의 부장품을 묘광의 어깨선 부근에다 매납(埋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