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리의 내촌마을 남쪽과 남동쪽의 얕은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 대규모의 집단묘 유적이다. 민족항일기 이후 최근까지 계속 도굴되고 있지만 봉분이 잘 남아 있는 대형 고분도 10여 기나 보인다.
정식 발굴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유구의 축조방법과 평면형태로 보아 대부분의 무덤구조는 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와 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로 추정된다.
횡구식석실묘 중 1기는 내부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석실은 부정형한 소형 할석으로 3벽을 10∼12단 정도 내경되게 쌓아올려, 그 위에는 긴 판석 7매를 뚜껑으로 덮었다. 나머지 짧은 벽 하나는 밖에서 나중에 막았다.
석실바닥에는 조그마한 할석조각들을 전면에 깔았다. 일반적인 횡구식석실묘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450㎝, 너비 140㎝, 높이 130㎝이다.
횡혈식석실묘는 널길〔羨道〕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을 뿐, 내부구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무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고분군의 규모에 비해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은 약간의 토기조각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유적이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된 데에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원래부터 박장(薄葬)풍습으로 인해 많은 유물을 부장하지 않은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채집된 토기조각들은 전체 모양을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으나, 제작기법상의 특징으로 보아 6세기 후반에서 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고분군에는 횡구식·횡혈식의 석실묘들이 적어도 100기 이상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김해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의 고분조사가 불과 2, 3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횡구식·횡혈식석실묘 매장유적지로서 이 유적이 지니는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하겠다.
원지리에는 이 유적 외에 원지리 산183번지에서 항아리·입큰항아리·작은그릇받침 등 4세기의 고식도질토기(古式陶質土器)들이 출토되어 동아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