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선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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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선동 출토 유물
부산 영선동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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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즐문토기 · 돌도끼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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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즐문토기 · 돌도끼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개설

영도(影島)의 서북쪽 해안가 언덕 위에 있다. 1930년을 전후해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아리미쓰[有光敎一] 등에 의해 여러 차례에 걸친 시굴과 표면채집이 이루어졌고, 그 유물의 일부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굴껍데기를 주체로 한 조개더미로 원래는 제법 넓은 범위로 분포되어 있었으나 도로공사때문에 그 당시에 이미 소멸되었다. 조개더미는 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의 아래쪽에 형성되어 있었으며, 시굴 당시 패각층(貝殼層)의 두께는 20∼50㎝이었지만 원래는 더 두꺼웠을 것이다.

내용

이 유적에서는 즐문토기, 타제와 마제의 돌도끼 등이 출토되었는데 즐문토기는 점토에 석립(石粒)과 장석(長石)을 섞은 태토로 제작하였다. 그릇의 종류는 호(壺)·발(鉢)·완(盌) 등이 있으며, 바닥은 모두 첨저(尖底) 또는 원저(圓底)이다.

발형토기(鉢形土器) 중에는 특이하게 주둥이가 달린 토기[注口土器]가 있고, 또 입술 윗면을 누르거나 그은 각목(刻目)이 있는 것과 구연부(口緣部)가 물결처럼 굴곡진 파상구연(波狀口緣)도 있어 주목된다.

문양이 있는 토기가 많으나 문양이 전혀 없는 토기도 있다. 문양은 구연부 또는 동체부(胴體部)의 상반부에 한정되어 시문(施文)되어 있으며, 전면에 시문한 것은 드문 것 같다.

문양의 종류는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융기문(隆起文)·단사선문(短斜線文)·사격자문(斜格子文)·집선문(集線文)·점렬문(點列文) 등이 있다. 다른 유적에 비해 다양하지는 않으나 횡주어골문이 압도적으로 많고 다른 문양은 극히 적다.

이 횡주어골문은 일반적인 침선문계(沈線文系) 어골문과는 달리 시문구의 끝으로 눌러찍는[押引] 독특한 방법으로 시문한 것으로 문양이 두껍고 짧다. 이 문양은 영선동 즐문토기의 대표적인 문양이다.

이 밖에 특이한 문양은 주구토기에 시문된 융기문이다. 구연에서 몸통 중앙에 걸쳐 점토띠로 만든 융기선(隆起線)을 N자형으로 연속 부착하고 띠 윗면과 양측면을 눌러 장식효과를 낸 것이다.

영선동 유적은 압인문계의 횡주어골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조개더미로, 이 유적의 중심연대는 남부지방의 즐문토기 전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또 초기철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속하는 회청색 도질토기(灰靑色陶質土器)와 적갈색 연질토기(赤褐色軟質土器)도 출토되었다.

이 유물과 즐문토기와의 층위관계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 위에 철기시대에서 고분기에 다시 사람이 살게 됨으로써 시기가 다른 두 문화기의 유적이 한곳에 겹쳐진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참고문헌

『한국의 조개더미유적』1·2(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 2010)
『朝鮮櫛目文土器の硏究』(有光敎一, 『京都大學文學部考古學叢書』 3, 1962)
「朝鮮釜山府瀛仙町の一貝塚に就いて」(有光敎一, 『人類學雜誌』 5-12, 1936)
집필자
정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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