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철기시대 이후 농기구나 무기로 사용된 철로 만든 낫.
주조제 쇠낫의 등장
갈동유적의 주조 쇠낫과 비교할 수 있는 요령 지역의 주조 쇠낫은 실제 사용되고 재활용이 되는 반면, 갈동유적 주조 쇠낫은 사용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한반도 내에서 출토된 주조 쇠낫은 아직 그 수가 많지 않아 전국계 물질 문화의 일시적인 유입으로 추정된다.
단조제 쇠낫의 성행
내만된 안쪽 면은 날을 세우고, 돌출된 ‘ㄱ 자’ 모양으로 기부의 자루에 끼운 후 쐐기 등을 집어 넣어서 낫과 자루를 고정하였다. 삼한의 대구 팔달동유적 등의 금호강 유역에서 출토된 예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후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까지 고분과 생활유적에서 형태와 크기를 달리하며 출토된다.
쇠낫의 변화와 소유 방식
삼국시대가 되면 무덤마다 쇠낫이 1점 이상씩 부장되는데, 이를 통해 쇠낫의 소유가 일상화되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쇠낫의 소유 형태 변화는 당시 농경의 확대에 따른 농기구의 소유 문제, 생산물에 대한 수취 체계가 마을 단위에서 개인으로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무기로도 사용된 쇠낫
참고문헌
단행본
- 『완주갈동유적』(호남문화재연구원, 2005)
- 『완주갈동유적Ⅱ』(호남문화재연구원, 2005)
논문
- 김상민, 「동북아시아 철겸의 변천과 완주 갈동유적 주조철겸의 등장배경」(『야외고고학』 34, 한국문화유산협회, 2019)
- 김성태, 「최근 보고된 고구려무기의 검토」(『고구려발해연구』 20, 고구려발해학회, 2005)
- 안승모, 「고대의 농구」(『한국농기구도감』, 한국농업기계학회, 2001)
- 홍보식, 「고분문화를 통해 본 6∼7세기대의 사회변화-영남지역을 중심으로-」(『한국고대사논총』 7,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5)
- 서영남, 「철겸에 대하여」(『동래복천동고분군Ⅱ』, 부산대학교박물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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