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농소리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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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농소리패총 출토 토기
김해 농소리패총 출토 토기
선사문화
유적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이칭
이칭
농소리유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개설

김해시에서 서남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은 이 마을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높이 약 70m의 작은 구릉상(丘陵狀)의 삼매산(三昧山) 동남쪽 비탈과 그 앞으로 연속된 경작지 일부에 분포되어 있다.

유적의 규모는 1,000여 평 정도이다. 그 중심지는 산비탈쪽인데 이 일대는 일찍부터 공동묘지로 조성된 적이 있어 유적의 원형이 심하게 변형되었다. 동쪽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조만강(潮滿江)이 남류하고 있다. 강 건너 동남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는 수가리패총(水佳里貝塚)이 있다.

이 유적의 발굴조사는 이 곳 주민이 조개껍질[貝殼]을 채취해 석회비료를 제조하고 있음이 계기가 되었다. 1964년 9월 21일부터 27일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이 긴급발굴을 실시하였다.

내용
  1. 층위

조사는 전 유적지 중 3지점을 골라 소규모의 발굴구덩이[發掘坑] 각 1개씩을 설정해 실시되었다.

첫째 지점은 순조개껍질만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순패각층(純貝殼層)만 존재하였다. 둘째 지점은 표토에서 맨 아래 바닥까지 비교적 온전한 퇴적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층위는 위로부터 제Ⅰ층 표토층, 제Ⅱ층 순패각층, 제Ⅲ층 조개껍질이 섞인 흑색부식토층, 제Ⅳ층 조개껍질이 섞인 적색점토층순으로 되어 있었다. 셋째 지점은 경사가 심한 곳으로 표토는 무너지고 제Ⅱ층인 순패각층이 없이 바로 제Ⅲ층부터 시작되며, 이어서 제Ⅳ층으로 연결되는 퇴적상태와 층위를 보여주고 있다.

  1. 유물

인공유물은 이들 각 지점의 제ⅢㆍⅣ층에서만 발견되었다. 양층 간의 유물은 층위에 따른 시대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단일문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발견된 유물은 적은 양의 토기편ㆍ석기ㆍ뼈연장[骨器] 등이었다. 특히 토기에 있어서는 이 유적의 문화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특징적인 것들이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자연유물로는 굴과 꼬막 등이 있다.

인공유물 중 토기는 모두 빗살무늬토기조각이다. 바탕흙은 사질토와 점토의 두 종류가 있다. 사질토로 된 것은 아가리조각[口緣部片] 1점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점토로 된 것이다. 이로 미뤄볼 때 이 곳 토기의 바탕흙은 점토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벽(器壁)의 두께는 0.7∼1㎝ 정도이다. 색조는 회갈색과 적갈색을 띠는 두 종류가 있다. 소성상태(燒成狀態)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토기를 만들 때는 테쌓기[積輪法]나 서리기[捲上法]를 이용해 만들었고, 보강제로는 소량의 세립장석(細粒長石)ㆍ석영(石英)ㆍ패분(貝粉) 등이 사용되었다.

기형(器形)으로는 바리모양[鉢形]과 사발모양[盌形]의 두 종류가 있으며, 바리모양토기 2점과 사발모양토기 1점이 있다. 그러나 바닥조각[底部片]만 발견된 것은 모두 뾰족바닥[尖底] 또는 둥근바닥[圓底]으로 그 기형은 바리모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가리는 거의 곧은 홑아가리[單口緣]와 겹아가리[複口緣]의 두 종류가 있으며 홑아가리가 다수이다. 그리고 겹아가리조각 중에는 한 줄의 점토띠를 덧붙인 것과 제작할 때 쌓아올린 점토띠의 주름을 그대로 남겨놓아 여러겹아가리[多重口緣]의 효과를 낸 것도 있다.

문양이 있는 토기조각은 극소수이며 그 종류도 단순하다. 문양은 모두 아가리에만 새겨져 있다. 홑아가리조각 중에서 문양이 있는 것은 바탕흙이 사질인 것 1점이며, 문양은 불규칙한 빗금무늬이다. 그리고 겹아가리조각 중에서 문양이 있는 1점은 덧붙인 점토띠 위에 가로로 손톱무늬[爪文]가 새겨져 있다.

그 밖에 구멍이 있는 토기로는 대형의 바리모양토기와 사발모양토기가 각 1점씩 있다. 이 중 대형 바리모양토기에는 지름 1∼1.2㎝의 뚫린 구멍[穿孔]이 몸체부 거의 전면에 나 있다. 사발모양토기에는 양 손잡이[把手] 바로 아래 지름 0.8㎝ 크기의 뚫린 구멍이 1개씩 나있다.

석기로는 회갈색 사질의 혈암제(頁岩製) 뗀돌도끼[打製石斧] 1점과 적갈색 세립사암제(細粒砂岩製) 숫돌 1점 등이 있다. 이 중 돌도끼는 가장자리를 때려 만든 납작돌도끼[扁平石斧]이다.

뼈연장으로는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尖頭器] 1점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깨어진 것이 1점 있다.

  1. 연대

이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放射性炭素)에 의한 연대측정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절대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발견된 유물 중 토기에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여러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① 문양이 없는 것이 많고 뚫린 구멍토기가 존재하는 점, ② 문양이 있는 토기는 문양이 전면(全面)이 아닌 아가리부분에만 새겨진 점, ③ 문양의 종류도 빗금줄무늬와 손톱무늬 등 주로 아가리부분 문양으로만 사용된 점, ④ 아가리부분의 형태로 겹아가리가 존재하는 점 등으로 상대적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상의 여러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요소를 고려해볼 때 이 유적의 연대는 신석기시대 말기로 추정되고 있다.

농소리패총은 부분적인 발굴조사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유적이고, 또 발견된 유물의 양이나 종류도 단순해 문화내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유물과 조만강을 통한 남해의 진출이 쉬운 입지조건 점 등을 고려해볼 때, 당시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통해 활발한 어로생활을 하였고,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의 존재로 수렵생활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의 어느 시기 동안에 존속한 빗살무늬토기문화인의 유적으로서 이 시기의 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김해수가리패총』Ⅰ(부산대학교박물관, 1981)
『금곡동율리패총』(김정학·정징원, 부산대학교박물관, 1980)
『한국고고학개설』(김원룡, 일지사, 1973)
『농소리패총발굴조사보고서』(김용기, 부산대학교박물관, 1965)
『韓國の考古學』(金廷鶴 編, 河出書房新社,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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