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개(point)는 몸체의 종류에 따라 크기가 대별된다. 대형에 속하는 주먹찌르개(pick)는 자갈돌을 손질하여 뾰족하게 튀어나온 삼릉선의 날을 만든 것으로 길이는 보통 20㎝ 내외이다. 이 석기는 전기 구석기시대에 처음 나타났으며 한반도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와 후기 구석기시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주먹찌르개는 연천 전곡리 유적, 청원 만수리 유적, 화순 도산 유적, 구례 용두리 유적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삼릉대첨상기(三稜大尖狀器)라고 부르는데 정촌(丁村) 유적의 유물이 전형이다. 반면 일본열도에서는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중기와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르발루아찌르개(Levallois point) 및 슴베찌르개(tanged point)와 나이프형석기(knife shaped tools)는 모두 소형에 속한다. 르발루아찌르개는 긴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격지로 슴베찌르개나 나이프형석기보다 더 크고 무겁다.
슴베찌르개는 유문암, 혼펠스, 규질셰일, 응회암 등으로 만든 돌날이나 뗀석기, 긴 격지를 잔손질해 뾰족한 부위와 자루에 연결하는 슴베 부위를 만든 것으로 길이가 보통 5~6㎝이나, 큰 것은 13㎝나 된다(사진 1. 슴베찌르개[진안 진그늘 유적 출토]). 이것은 단양 수양개 유적, 진안 진그늘 유적, 대전 용산동 유적, 임실 하가 유적, 순천 월평 유적 등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슴베찌르개는 42,000년 전부터 후기 구석기시대가 끝나는 무렵까지 존속하여 한국의 후기 구석기문화를 대표하는 석기인데, 일본 규슈 지역에서 29,000년 전 이후 수천 년 동안 성행하여 한반도 구석기인의 일본열도 이주 및 양 지역의 문화교류를 입증하고 있다.
나이프형석기는 긴 격지나 돌날의 한 변이나 두 변, 또는 일부를 잔손질하여 자르거나 찌르기 좋은 형태로 만든 석기이다(사진 2. 나이프형석기[임실 하가유적 출토]).
그리고 모뿔찌르개는 두터운 격지의 양변을 잔손질하여 한 끝은 삼릉선의 뾰족한 날, 그 맞은 편은 슴베 또는 잡이로 쓸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일본학계에서 각추상석기(角錐狀石器)라고 부른다.
나이프형석기와 모뿔찌르개는 일본열도의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석기로 알려져 있으나, 임실 하가 유적, 단양 수양개 유적, 광주 삼리 유적 등지에서 발견되어 그것의 기원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나뭇잎찌르개(leaf shaped bifacial point)는 버드나무나 월계수의 잎처럼 양끝이 뾰족하고 몸통의 횡단면은 볼록렌즈형이며, 크기는 소형~대형으로 다양하다(사진 3. 나뭇잎찌르개[임실 하가 유적 출토]). 이것은 격지의 양면을 뿔이나 나무망치로 잔손질하여 만든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장흥 신북 유적, 순천 월평 유적, 임실 하가 유적, 그리고 약 1만 년 전의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하여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전환이 단절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르발루아찌르개, 슴베찌르개, 나이프형석기, 모뿔찌르개, 나뭇잎찌르개는 모두 창끝으로 사용되었다. 라스코동굴에는 창에 찔려 창자가 쏟아진 상태의 들소가 뿔로 받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 앞에는 사냥꾼이 나자빠진 장면의 벽화가 있는데, 아마도 급소를 맞추지 못한 사냥꾼에게 일어난 사고를 기록한 것으로 해석된다.
후기 구석기인들은 사냥감에서 멀리 떨어져 안전하게 사냥하려고 창던지개[추진기]를 고안하였고, 좌우 대칭형의 슴베찌르개, 모뿔찌르개, 나뭇잎찌르개 등 다양한 창끝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창끝은 후빙기 이후 사냥감의 중소형화에 발맞춰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이려는 노력 속에 신석기시대에 좌우 및 양면 대칭의 활촉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