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지석묘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고인돌 유적으로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상당수의 고인돌이 있었는데, 마을 조성과 경작 등으로 인해 소멸되고 3기만 남았다고 한다. 1호는 1976년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2호와 3호는 각각 1985년과 1996년에 동의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2호와 3호는 민가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으며, 1호와는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1호의 경우, 덮개돌은 후대에 소실되었고, 지표면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깬돌, 널돌, 깬돌이 채워져 있었고, 그 밑에 무덤방이 축조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세형동검(細形銅劍)과 검은간토기가 있다.
2호는 덮개돌과 이를 받치는 받침돌이 있고, 그 밑에 돌무더기가 있으며, 그 밑에 깬돌로 축조된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의 바닥 면에는 고운 흙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깬돌 2매를 1열로 하여 간격을 두고 6열이 놓였는데, 이는 목관을 놓기 위한 받침대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로는 바닥면에서 붉은간토기와 돋을띠무늬토기가 확인되었다.
3호는 3기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며, 위에서부터 차례로 덮개돌 · 돌무더기 · 뚜껑돌 · 무덤방으로 이루어져 있어 1호 · 2호와 비슷한 구조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425㎝, 너비 270㎝, 두께 130㎝이며, 돌무더기는 대형 깬돌을 두세 겹 채운 모습이며, 무덤방의 바닥면에는 전체적으로 깬돌이 깔렸다.
출토 유물로는 붉은간토기 및 돋을띠무늬토기 등이 있는데, 뚜껑돌 위에서 발견된 꼬막 조개껍데기와 붉은간토기를 통해 뚜껑돌을 덮은 후에 장송 의례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무더기 사이에서는 성인의 아래턱뼈와 팔뼈로 분석된 사람 뼈의 조각이 수습되었다.
내동지석묘는 남방식 지석묘라고도 하는 바둑판식 고인돌로 알려졌지만, 덮개돌 · 받침돌 · 돌무더기 · 무덤방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창원덕천리지석묘군을 중심으로 하여 주로 서부 경남 지역의 특징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 깬돌로 쌓은 무덤방의 벽면은 마치 가야 고분의 벽면처럼 매우 정연하게 축조된 모습이어서 당시 발달된 기술 수준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돋을띠무늬토기는 일본 열도의 야요이 문화〔彌生文化〕와 관련된 것이어서 당시 한일 간의 교류를 시사하기도 한다. 시기는 청동기시대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