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의 고인돌.
발굴경위 및 결과
형태와 특징
2호는 덮개돌과 이를 받치는 받침돌이 있고, 그 밑에 돌무더기가 있으며, 그 밑에 깬돌로 축조된 무덤방이 있다. 무덤방의 바닥 면에는 고운 흙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깬돌 2매를 1열로 하여 간격을 두고 6열이 놓였는데, 이는 목관을 놓기 위한 받침대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로는 바닥면에서 붉은간토기와 돋을띠무늬토기가 확인되었다.
3호는 3기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며, 위에서부터 차례로 덮개돌 · 돌무더기 · 뚜껑돌 · 무덤방으로 이루어져 있어 1호 · 2호와 비슷한 구조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425㎝, 너비 270㎝, 두께 130㎝이며, 돌무더기는 대형 깬돌을 두세 겹 채운 모습이며, 무덤방의 바닥면에는 전체적으로 깬돌이 깔렸다.
출토 유물로는 붉은간토기 및 돋을띠무늬토기 등이 있는데, 뚜껑돌 위에서 발견된 꼬막 조개껍데기와 붉은간토기를 통해 뚜껑돌을 덮은 후에 장송 의례가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무더기 사이에서는 성인의 아래턱뼈와 팔뼈로 분석된 사람 뼈의 조각이 수습되었다.
의의 및 평가
또 깬돌로 쌓은 무덤방의 벽면은 마치 가야 고분의 벽면처럼 매우 정연하게 축조된 모습이어서 당시 발달된 기술 수준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돋을띠무늬토기는 일본 열도의 야요이 문화〔彌生文化〕와 관련된 것이어서 당시 한일 간의 교류를 시사하기도 한다. 시기는 청동기시대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논문
- 김재현, 「김해 내동 제3호 큰돌무덤 출토 인골에 대한 소견」(『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학연문화사, 2000)
- 임효택, 곽동철, 「김해 내동 제3호 큰돌무덤」(『한국 고대사와 고고학』, 학연문화사, 2000)
- 임효택, 하인수, 「김해 내동 제2호 큰돌무덤」(『동의사학』 8, 동의대학교 사학회, 1988)
- 김정학, 「김해내동지석묘조사개요」(『부산당감동고분군』 부록1, 부산대학교박물관, 1983)
- 金廷鶴, 「金海內洞支石墓群調査槪要」(『考古學ジャ-ナル』 128, ニュ-サイエンス社, 197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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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인돌에서 굄돌이나 받침돌 위에 올려진 큰 돌. 북방식에서는 돌방의 천장을 이루며, 남방식에서는 아래 구조를 보호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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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동검의 하나. 평양을 비롯하여 전국의 고인돌ㆍ돌무덤 따위 고분의 부장품(副葬品)으로서 남만주ㆍ연해주ㆍ시베리아ㆍ북중국에서도 발견되며, 한국식 동검이라고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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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그릇 면이 검고 겉면을 반들반들하게 간 토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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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그릇의 겉에 붉은 칠을 바르고 문질러 닦아서 붉고 반들반들하게 만든 토기(土器).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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