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태실지

  • 생활
  • 유적
  • 조선 전기
  • 시도자연유산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태를 봉안했던 태실터.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심봉근 (부산대학교,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7일
사천 세종대왕 태실와 잔존 석재 미디어 정보

사천 세종대왕 태실와 잔존 석재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태를 봉안했던 태실터.

내용

197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천시 곤명면에는 세종대왕과 그의 애손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이곳의 태실은 1929년 경기도 양주군으로 이전되었고 현재는 석재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곳은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新羅五岳綜合學術調査團)에 의하여 1967년에 조사되기도 하였다. 세종대왕의 태실지(胎室址)에는 현재 대구시 허모씨가(許某氏家)의 묘 1기가 있으며, 석재(石材)는 사방 계곡에 매몰 파손되었다.

수습된 석재는 탑좌(塔座)에 약간 파손이 있는 귀부(龜趺)와 태홍(胎缸)을 안장하는 중동석(中童石), 상개연엽석(上蓋蓮葉石), 석난간(石欄干), 난간지대석(欄干地台石), 전석(磚石), 팔각대석(八角臺石) 등이 이곳저곳에서 수습되어 있다.

세종대왕 태실비와 석물(石物) 9점을 근거로 하여 복원된 태실의 모습은 중앙 팔각의 대석위에 중동석과 상개연석을 놓은 뒤에 주변에 전석을 깔고 팔각으로 석난간을 설치하였다고 추정된다.

조선 왕실은 세종대왕의 탄생을 경하(敬賀)하기 위하여 태실을 봉안코자 풍수지리가 제일 좋다는 이곳 태봉산(胎峰山 : 당시 소용산)을 택하여 세종 원년(1419)에 태실을 설치하였다하며 왕실 봉안시에 석물은 충청도에서, 지물과 집기는 전라도에서, 식량과 사역은 경상도에서 담당하였다고 전해온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