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1530년 왜구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했다 하여 파직되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형조판서 등을 거쳐 1533년 지중추부사에 올라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7년 형조·호조·병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다.
이듬해 성주사고(星州史庫)가 불타자 왕명에 따라 춘추관(春秋館)의 실록을 등사, 봉안하였다. 1545년(인종 1) 윤임(尹任) 일파의 탄핵으로 사직하였다. 이 해 명종이 즉위한 뒤 을사사화로 윤임 등이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좌찬성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익산에 은퇴하였다.
문명이 높고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잘 썼다. 익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양곡집(陽谷集)』이 있으며, 글씨는 양주에 「임참찬권비(任參贊權碑)」와 「소세량부인묘갈(蘇世良夫人墓碣)」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양곡집(陽谷集)』
- 『인재집(忍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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