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강릉참봉, 경기전참봉,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길로 즉시 귀가하여 독서로 소일하면서 학숙(學塾)을 열어 학규를 엄격히 하고 고훈격언(古訓格言)으로 학도를 가르쳤다.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보로 공주의 행재소까지 왕을 호종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고 1627년에 사옹원봉사의 제수를 받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하하는 세자를 만나 완산(完山)으로 호종하였다. 뒤이어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경헌(景獻)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송자대전(宋子大全)』
- 『청음집(淸陰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