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중찬(中贊) 송분(宋玢)이다.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송서(宋瑞)의 형이다.
1299년(충렬왕 25) 전판밀직사사(前判密直司使) 유비(柳庇)가 아버지 송분을 모함할 때 우부승지(右副丞旨)로 함께 투옥되었다.
1304년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여러 번 충렬왕(忠烈王)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다녀왔는데, 매번 충렬왕과 전왕(前王: 忠宣王)의 부자가 사이좋지 않음을 이용하여 종형 송방영(宋邦英)과 왕유소(王惟紹) 등과 함께 이간시켰다. 그리고 충선왕의 비 보탑실련공주(寶塔實憐公主: 계국대장공주)를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에게 개가(改嫁)시키려 하였으며 충선왕의 환국을 저지하는 등 백방으로 간계(奸計)를 부렸다.
같은 해 송방영 등과 함께 원나라에 갔다가 정동성(征東省)에 갇혀 있었는데, 이 때 원제(元帝) 유모(乳母)의 도움으로 풀려 나왔다. 1307년 귀국하여 실제로 정치를 맡고 있던 전왕에 의하여 서흥후 왕전·송방영·왕유소·송균(宋均)등과 함께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