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忠惠王)의 총신(寵臣)으로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 1332년 충숙왕(忠肅王)이 복위하자 충혜왕의 다른 폐신들과 함께 순군부(徇軍部)에 갇혔으며, 1339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상호군(上護軍)에 올랐다.
항상 충혜왕의 미행(微行)을 따라다녔으며, 왕의 유흥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시중의 물건을 빼앗는 등 행패가 심하였고, 숭교사(崇敎寺)의 연지(蓮池) 곁에 누각을 지어 잔치할 장소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왕을 잡아간 뒤, 고용보(高龍普)가 충혜왕의 폐신 10여 인을 모두 잡아 가두었으나, 송명리는 고용보와 친분이 있어 화를 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