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대전광역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동춘당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 11대손까지 살아오고 있는 고가이다.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서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안채를 중심으로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 그리고 사당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고 있다.
사괴석담장에 달려 있는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는 큰사랑채가 있고 우측에는 작은 사랑채가 나란히 있는데 큰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으로, 동쪽편부터 전면에 툇마루가 달린 2칸의 대청과 1칸의 큰사랑방, 이어서 1칸의 윗사랑방을 드렸다.
이 방들 사이에는 4분합 들어열개나 미닫이문을 달아 필요할 때 이 방들을 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의 융통성을 주었다. 그리고 윗사랑방 옆 1칸에는 앞 칸은 온돌방으로, 후면 칸은 상부는 다락으로 하부는 온돌아궁이의 함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작은사랑채는 정면 8칸, 측면 2칸의 一자형으로 되었다.
서쪽 편 1칸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만들고 이어서 2칸의 고방(庫房)과 2칸의 작은 사랑방, 1칸의 대청과 2칸의 건넌사랑방, 그리고 1칸의 대청을 다시 드렸으며, 이들 방 앞에는 툇마루를 달았다. ㄱ자형으로 된 안채는 一자형의 작은 사랑채와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평면은 ㄱ자의 꺾어지는 부분에 우물마루를 깔은 3칸통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1칸의 마루방과 2칸의 안방, 그리고 그 앞에 2칸의 부엌을 드렸고 우측에는 2칸의 건넌방을 만들었다. 안채의 뒤편 좀 높은 곳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된 사당이 있는데 건물의 정면에 송씨가묘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자연석기단위에 네모뿔형주초석을 놓고 네모 기둥을 세운 후 민도리 계통의 5량가구에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도 네모뿔형주초석을 놓고 네모을 세워 3량가구로 간결하게 꾸몄다.
전체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당 등이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고택으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이나 생활상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