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선 ()

송학선 사진
송학선 사진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창덕궁의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시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송인수(宋仁壽), 송학선(宋學善)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1926년
출생지
서울
정의
일제강점기 때, 창덕궁의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시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초명은 송인수(宋仁壽)·송학선(宋學善).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阿峴北里: 지금의 서울 아현동)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인쇄직공 송성진(宋聖振)의 아들이다. 성품이 과묵하고, 남과 언쟁을 하지 않았으며, 청결한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생애 및 활동사항

집안이 가난하여 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13세 때 가족이 흩어져 거리를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도 하였다. 1909년 남대문로에 있는 일본인 경영의 오쿠다농구회사[奧田農具會社]의 고용인으로 일하게 되고, 아버지 역시 인쇄공으로 일하게 되어 한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7년 뒤 각기병으로 실직하였다.

일본인 밑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일제에 대한 원한이 쌓였고, 사회적·민족적으로 항일의식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토[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을 숭배하고, 자기도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사살하기로 결심하였다.

1926년 3월 잠시 사진관에서 일하면서 양식도(洋食刀)를 손에 넣게 되었는데, 그 칼을 품고 과자행상을 가장해 사이토를 노렸다. 그 해 4월 26일 순종이 죽자, 사이토가 조문하기 위해 창덕궁으로 올 것을 기대하고 4월 28일 금호문(金虎門) 앞에 나아가 대기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 일본인 3명이 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비호같이 자동차에 뛰어올라 이들을 찔렀다.

그러나 이들은 총독 일행이 아니라 경성부회 평의원인 다카야마[高山孝行]·사토[佐藤虎次郞]·이케다[池田長次郞] 등이었다. 현장에서 붙잡혀 1926년 11월 10일 사형이 확정,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송학선의 김호문의거에 대한 고찰」(김의환, 『조좌호박사화갑기념논총: 현대사학의 제문제』, 일조각, 1977)
『동아일보(東亞日報)』
「송학선판결문(宋學先判決文)」(경성지방법원형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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