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고읍성

  • 예술·체육
  • 유적
  • 시도자연유산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수원의 성곽. 읍성.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소재구 (국립청주박물관,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수원 고읍성 미디어 정보

수원 고읍성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수원의 성곽. 읍성.

내용

198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2.5m, 너비 약 2∼2.8m의 축성 자취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수원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있던 곳으로 현재 약 540m 가량이 남아 있으나 원래의 길이는 약 1.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隆陵), 정조와 그 왕비의 능인 건릉(健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이 읍성이 세종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둘레는 270보(약 1.2㎞)이고, 성 안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이 퇴락되었다고 적혀 있어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뒤 1789년(정조 13)에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현륭원(顯隆園: 지금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그 보호구역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옛 터가 상당수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존하는 성터는 융릉의 북쪽 산 정상부에 일부 남아있는데, 한신대학교박물관의 조사 결과 융건릉 능역 내부에서 수원부의 담장으로 추정하였던 부분이 원래 수원고읍성의 성벽임이 확인되었으며, 약 300m 가량의 성벽이 조사되었다.

따라서 수원고읍성은 이곳 북편의 정상부에서 좌우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로 좌우를 연결하는 장방형의 성이었으나, 인구의 증가 및 협소한 공간 등의 이유로 성 안의 치소(治所)들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자, 성은 자연히 황폐하여지고 수백년 후에는 현륭원의 축조공사로 그나마 잔존하던 옛 성의 자취들이 유실되었다고 본다.

참고문헌

  • - 『水原 古邑城』(한신대학교박물관, 2000)

  • - 문화재청(www.cha.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