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공신 ()

고려시대사
개념
고려후기 국왕이 원나라에 갈 때 수종한 공으로 책봉된 공신. 시종공신 · 호종공신 · 친종행리공신.
이칭
이칭
시종공신, 호종공신, 친종행리공신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국왕이 원나라에 갈 때 수종한 공으로 책봉된 공신. 시종공신 · 호종공신 · 친종행리공신.
개설

시종공신(侍從功臣)·호종공신(扈從功臣)·친종행리공신(親從行李功臣)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원나라 간섭기에 들어서면서 국왕이 친조(親朝)라 해 원나라에 가거나 또는 장기간 머무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다.

더욱이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독로화(禿魯花 : 볼모)로서 원나라에서 생활하였다. 이 때 수종했던 사람들에게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고려 국왕이 중국에 가게 된 것은 몽고와 강화가 성립된 이후부터이다.

1264년(원종 5) 8월 원종이 처음으로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 그 후 귀국해서 수종한 관료와 졸도(卒徒)들에게 쌀을 지급하였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한 직후에는 시종한 사람들에 대한 포상이 더욱 강화되었다.

즉, 이전에 원나라에서 시종했던 사람들에게 상과 함께 내료(內僚) 등의 한품자(限品者)들에게는 허통(許通)할 수 있는 특혜를 베풀었다. 1281년(충렬왕 7)에는 왕명으로 이들에 대한 상전(賞典)이 논의되고, 다음 해 5월에 공신 책봉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최초의 수종공신이었다. 이 때 장군 정오부(丁伍孚)·정인경(鄭仁卿)·차득규(車得珪)·이지저(李之氐), 대부윤(大府尹) 김응문(金應文), 낭장(郎將) 김의광(金義光) 등 7명이 1등공신에, 대장군 나유(羅裕), 장군 김부윤(金富允) 등 11명이 2등공신에 각각 봉해졌다.

1287년에도 앞서 충렬왕이 1278년 원나라에 갈 때 수종했던 사람들에 대한 공신 책봉이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토지와 노비가 지급되고, 특히 내료 등 남반(南班) 7품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던 사람들을 허통시키는 특전을 베풀었다.

그래서 국왕이 원나라에 갈 때면 다투어 수종하려는 풍조가 생기기도 하였다. 1327년(충숙왕 14) 11월에는, 1321년부터 1325년까지 5년 동안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수종했던 신하들을 공신에 책봉하였다. 1등공신에 첨의정승(僉議政丞) 윤석(尹碩) 등 26명을, 2등공신에 찬성사(贊成事) 정방길(鄭方吉) 등 54명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3) 6월에는,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한 뒤에 충혜왕을 수종하면서 보필해 온 윤석 등 32명을 1등공신에, 영창군(永昌君)김승택(金承澤) 등 18명을 2등공신에 책봉하였다.

그리고 1352년(공민왕 1)에 공민왕이 즉위하기 전 원나라에서 수종했던 찬성사 조일신(趙日新) 등 6명을 1등상공신(一等上功臣)에, 손기(孫琦) 등 18명을 1등공신에, 상호군 이야선첩목아(李也先帖木兒) 등 8명을 2등공신에, 판사(判事) 김원(金元) 등 5명을 3등공신에 각각 봉하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고려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 원나라에서 생활하거나 직접 원나라에 내왕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수종공신의 책봉은 자연히 없어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수종공신 가운데에는 문무관료 이외에도 역관(譯官)이나 내료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예외 없이 허통되어 고위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따라서, 수종공신의 책봉은 고려 후기 사회에서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창출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