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유식학의 대가로 『성유식론요간』, 『인명입정리론초』 등을 저술한 승려.
내용
건봉연간(乾封年間, 666∼667) 당나라로 가는 입공사신(入貢使臣)의 편에 자신이 세운 결정상위부정량을 써서 현장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때 이미 현장이 입적(入寂)한 지 2년 뒤였으므로 현장에게 보일 수 없었다. 다만 현장의 수제자인 규기(窺基)가 그것을 보고 매우 감탄하였다고 한다.
그의 저술 중에는 중국에 전해진 것이 많다. 국내에서 공부하였으면서도 이름을 중국에까지 크게 떨쳤던 법상학(法相學)의 대덕(大德)이었다. 그의 소종(所宗)은 법상대승요의교(法相大乘了義敎)였다고 한다.
그는 또 『화엄경』에 있는 ‘시종발심편성불(始從發心便成佛)’에 대하여 비방을 하고 믿지 않다가 생신(生身)으로 지옥에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저서로는 『법화경요간(法華經料簡)』 1권과 『대비바사심론초(大毘婆沙心論抄)』 10권, 『성유식론요간(成唯識論料簡)』 1권, 『인명입정리론초(因明入正理論抄)』 1권 등이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宋高僧傳)』
-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