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김한충의 증손 김형석(金炯錫)·김형돈(金炯敦)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병재(金炳梓)의 서문, 권말에 증손 김환정(金煥正)·김형돈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석인본. 서울의 김종원가(金鍾元家)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1수, 소(疏) 1편, 서(書) 2편, 장(狀) 2편, 문(文) 1편, 기(記) 28편, 권2에 부록으로 비소시(匪所詩) 23수, 비소서(匪所書) 15편, 가장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에는 임진왜란 때 충절을 세웠던 9대조 김익복(金益福)에게 200년 뒤에 시호가 내려지자 당시의 명공 석학들과 함께 경하하는 시가 있다. 소의 「청만동묘복향소(請萬東廟復享疏)」는 1865년(고종 2) 대원군이 만동묘를 철폐하자 다시 복원할 것을 청한 상소이다. 만동묘를 짓게 된 동기, 조정으로부터 전토·노비·사액을 받아 춘추로 향사하게 된 내력을 기술하고, 수백 년 동안 사기(士氣)를 배양하고 의리를 강구한 곳임을 역설하고 있다.
문의 「자경문(自警文)」에서는 사람이 우주 대자연의 섭리 속에 태어나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함양해 인생의 직분을 다할 뿐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기의 「초산적소일기(楚山謫所日記)」는 저자가 만동묘 철폐령을 극력 반대하다가 평안북도 초산으로 귀양갈 때의 일기이다. 1866년 4월 5일부터 5월 3일까지의 기록인데, 서울을 출발해 초산에 도착하기까지 매일 듣고 본 것과 노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부록의 「경정초산비소시(敬呈楚山匪所詩)」와 「경정초산비소서(敬呈楚山匪所書)」는 저자가 초산 적소에 있을 때 저자의 의리 정신과 기절을 찬양하는, 당시 석학들인 이원식(李源植) 등 18인의 시와 박제유(朴濟裕) 등 17인의 서찰이다.
한말 유학사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