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때, 이강년 의진에서 참모관으로 활동한 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월 11일 안동의진에 의하여 쫓겨나 도주 중인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 참수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달 15일 문경 마고성(麻姑城)에서 적을 맞아 일명 ‘할이전전투’를 전개하였으나, 병력의 열세로 패전하였다. 이 때 신경희의 신분이 드러나 고향의 본가가 관군에 의하여 불태워졌고, 이로 인하여 인근의 십여호가 전소되었다.
그 뒤 1907년에는 단양에서 재차 기의한 이강년의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단양의 복상곡(復上谷)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적에게 생포되었다. 압송되어 가던 중 도주하여 산간에 피신한 뒤 치료 중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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