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년(흥덕왕 3) 김대렴은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당나라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인덕전(麟德殿)에서 당 문종(文宗)을 알현하고 그해 12월 신라로 돌아오면서 차 씨앗을 가져왔다. 흥덕왕은 씨를 지리산에 심게 하였고, 이것이 점차 보급되어 차 재배가 확산되었다.
신라에서 차가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삼국사기』 「설총(薛聰)」 열전에 '다주(茶酒)'가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경덕왕 때의 승려인 충담사(忠談師)가 차를 달이는 도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에 '헌다(獻茶) 공양'이라고 하여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예법이 있으므로, 신라 사람들은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할 무렵에 차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흥덕왕」 조에는 선덕왕(善德王) 때부터 재배가 이루어지다가 당나라에서 종자가 도입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렴이 당에서 가져온 차는 신품종이었으며, 지리산 토양에 맞아 생산에 성공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어 신라의 왕실, 귀족, 승려들이 차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사절 파견과 차 도입 외에 김대렴의 활동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