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자리 잡은 고대 정치체들은 이른 시기부터 주변 정치체들과 교류해 왔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외교를 벌이고 필요한 물자를 교역하며 선진 문물을 도입하기 위해 정기, 비정기적으로 사절을 파견하여 교류하였다.
교역 활동의 경우 초기에는 정치적 지배자의 권위를 높여 주는 위세품(威勢品), 종교용품, 필수 물자가 호혜적 목적으로 교환되었으며, 점차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무역으로 성격이 바뀌어 갔다. 교관선을 보낸 목적도 초기에는 복합적인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주로 무역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삼국, 가야, 남북국이 외교 교섭과 교역을 위해 공식 사절을 파견한 많은 사례가 있으나, 해로를 이용할 때 어떤 배를 탔고 승선 인원의 구성이 어땠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는 많지 않다.
발해의 중대성(中臺省)이 일본 태정관(太政官)에 보낸 문서를 보면, 841년에 일본으로 파견된 인원이 사두(使頭) 이하의 외교 사절과 65인의 말갈 출신 수령, 그리고 28인의 뱃사공을 포함해서 모두 105명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려 준다. 신라는 752년에 700명이 넘는 인원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한편 839년에 장보고 세력이 당나라의 산둥〔山東〕 지역에 교관선 2척을 보냈다는 기록이 엔닌〔圓仁〕의 『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전한다. 신라의 공식 사절이 아니고, 청해진을 기반으로 하여 세력을 키운 장보고가 마치 공식 교관선인 것처럼 보낸 선박으로서 당 및 재당(在唐) 신라인과 무역을 벌였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