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잡전(鷄林雜傳)』은 김대문(金大問)이 지은 책이다. 김대문은 신라 중기의 진골 출신 귀족이었으며, 성덕왕(聖德王) 때 한산주(漢山州)의 도독(都督)을 지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실린 그의 전기를 따르면,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책의 신라본기(新羅本紀) 법흥왕(法興王) 15년 조(條)에 김대문의 『계림잡전』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 책을 김대문이 지었고, 고려 중기에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이를 직접 보고 참고하였음이 분명하다.
현재 책이 남아 있지 않고, 『삼국사기』에 일부 내용이 인용되어 있을 뿐이어서 서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 법흥왕 조에 각각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신라 고유의 왕호(王號)와 불교를 공인할 때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사실을 김대문의 저술로부터 인용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차돈 순교에 관한 내용은 그 출처가 『계림잡전』이라고 명기되어 있으나, 나머지는 "김대문이 이르기를[云]"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그 내용으로 보아 『계림잡전』을 전거로 삼았다고 추정된다. 즉, 김대문에 의하면, 신라에서 차차웅은 무당[巫]을, 이사금은 잇자국과 개수를, 마립간은 말뚝으로서 지배자의 지위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에 불교가 유입되었을 때 여러 신료들이 이를 반대했으나, 이차돈은 불교의 가르침에 찬동하고 그에 대한 처벌로서 죽임을 당할 때 신비한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음을 전한다.
이러한 사항은 모두 신라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것이어서 『계림잡전』에 실려 있었다고 보인다.
신라 당대의 저술로서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책은 없다. 『계림잡전』도 마찬가지이지만, 다행히 그 내용의 일부가 『삼국사기』에 인용되어 전해지고 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김대문이 신라 중기까지 전해지고 있던 전통적인 제도와 문화에 관한 기록과 전승을 수집하여 『계림잡전』을 지었다고 미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