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금(尼師今) 칭호에 이어 제17대 내물왕부터 제22대 지증왕 4년에 중국식 왕호를 칭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마립간이라는 말은 ≪삼국사기≫에 인용된 김대문(金大問)의 설명에 의하면 “방언으로 말뚝[橛]을 이름이요, 궐은 함조(諴操)의 뜻으로 자리를 정하여 두는 것이니, 왕궐이 주가 되고 신하의 궐은 아래에 배열하는 것을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언어학적 설명에 의하면, 마립은 ‘마루[宗]’·‘마리[廳]’ 등과 같은 어원의 말이라 한다. 따라서 마립간은 마루칸[麻樓干]·누칸[樓干]·종간(宗干)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대수장(大首長)을 뜻하고 있다.
마립간이라는 칭호의 사용은 신라의 왕권이 신장됨에 따라 왕이 화백회의의 사회자로 군림하게 되고, 왕위의 세습화가 이루어지게 된 5세기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17대 내물왕, ≪삼국사기≫에서는 19대 눌지왕부터 마립간 칭호가 사용되었다고 하여 시대적 차이가 있다.
내물왕 때 고구려의 지원하에 사로국이 진한(辰韓) 여러 나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백제와 가야 및 왜의 세력을 격파하면서 지배질서를 확립해 갔다는 점에서는 내물왕대설이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고구려의 간섭을 벗어나고 왕위의 부자상속 원칙이 확립된 것은 눌지왕대에 이르러서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드러난 차이는 신라의 왕권성장과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