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딸이다. 무열왕비 문명왕후(文明王后)의 소생으로 김유신(金庾信)의 생질이다.
642년 8월 백제의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大耶城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을 함락시키니 대야성도독 이찬(伊飡) 품석(品釋)과 그의 처 고타소랑이 함께 죽었다.
김춘추는 이 소식을 듣고 백제를 멸망시켜 딸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하여 고구려에 청병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당나라에 가서 청병을 허락받고 돌아왔다. 김유신은 대야성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647년 백제를 쳐서 포로된 백제장 8인과 고타소랑 부부의 해골을 교환하여 왔으며, 660년(태종무열왕 8)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멸하자 법민(法敏)은 의자왕의 왕자 융(隆)에게 “너의 아비는 나의 누이동생 고타소랑을 참혹하게 죽여 옥중에 묻어 나로 하여금 20년이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였다.”고 꾸짖었다.
이처럼 대야성에서의 고타소랑의 죽음은 왕가의 명예와 가야지역의 수호와 삼국통일의 직접 · 간접의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