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출신지와 가계 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암소를 몰고 다녔기 때문에 견우옹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도중에 바닷가의 벼랑 밑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천장(千丈) 높이의 벼랑에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가지고 싶어하자 마침 암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가 현존하는 향가 25수 중의 하나인 <헌화가>이다. 견우옹의 실체에 대해서는 선승(禪僧) · 농신(農神) · 신선 · 남자무당 또는 단순한 촌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