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42.9㎝, 입지름 42.0㎝. 원래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금강산 신계사에 있었다 하여 ‘신계사향완’으로 불리고 있는 이 향완은, ‘표훈사향완(表訓寺香垸)’이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고려시대 고배형(高杯形) 청동은입사향완의 일반형식으로 14세기 중엽 무렵의 것들, 특히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중흥사향로(重興寺香爐, 1344년)와 서울 개인 소장의 상원사향완(上院寺香垸, 1346년)의 형태를 거의 닮고 있으며, 국내외의 고려시대 고배형 청동은입사향완 가운데 가장 크다.
넓은 구연(口緣)과 한 단[一段]의 굽받침을 구비한 직립(直立) 형태의 몸체에는 주위를 여의두문(如意頭文)으로 둘러싼 네 개의 원을 마련하여 내부에 범자(梵字)를 금판(金板)으로 박아 장식하였으며, 몸체의 여백과 구연 윗면, 받침대 확대 곡면(曲面)에는 은입사의 보상화문(寶相花文)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그리고 두터운 구연부의 테두리 윗면에는 당초문(唐草文)이 입사되었으며, 구연단(口緣端)에는 14세기 향완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번개무늬[雷文]가 정교하게 둘러져 있다.
몸체를 받치고 있는 받침대 정상의 2단 원륭대(圓隆帶)에는 유운문(流雲文)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고, 몸체 하단부와 받침대 윗부분에는 거의 같은 형태의 앙련문(仰蓮文)과 복련문(伏蓮文)을 굵은 선(線)으로 은입사하여 강조하고 있다.
받침의 높직한 원반(圓盤)에는 연화문(蓮花文)이 의장되어 있고, 대 밑부분의 부연(附緣)에는 은입사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이 향완의 조성 연대(至正十二年, 1352년)와 봉안한 장소(無量壽殿), 조성 관련자와 입사 기술자[縷工]등을 파악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기체(器體)가 둔후(鈍厚)하여 육중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조성 연대가 확실할 뿐 아니라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가는 선의 은입사 문양이 기체 전면에 빈틈없이 장식되는 등 고려 후기 향완의 양식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4세기 중엽의 청동은입사향완의 양식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향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