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년(영조 26)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삼연(金三淵)과 김수근(金洙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신림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26년(순조 26)용제동으로 이건하였다가 1851년(철종 2) 다시 이건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68년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용제사(龍堤祠), 6칸의 상서당(尙書堂), 신문(神門),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 정문, 2칸의 장서각(藏書閣), 2칸의 전사청(奠祀廳), 8칸의 주소(厨所) 등으로 되어 있다.
사우(祠宇)인 용제사에는 김삼연과 김수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인 상서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어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재는 제관들의 숙소로, 서재는 유생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물(祭物)을 마련하여 두는 곳으로, 장서각은 서적 및 책판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며, 주소는 서원을 지키는 고자가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1,3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