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헌종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익(朴翊)과 그의 제자 박융(朴融) · 박소(朴紹) · 박조(朴調) · 박총(朴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창건과 함께 ‘신계(新溪)’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그뒤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5칸의 정사(精舍), 5칸의 고사(庫舍) · 신문(神門) · 대문 등이 있으며, 묘우에는 박익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박융 · 박소 · 박조 · 박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정사는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며 협실은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곳이다. 고사는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거나 기물(器物)을 보관하며, 평상시에는 서원을 지키는 고자(庫子)가 거처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신계서원 제기는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유물은 청도 용강사(龍岡祠)에 보관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1,200평, 임야 10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