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신관(申綰). 자는 군미(君美). 고려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육(申堉)이고, 아버지는 신여규(申汝逵)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한수(韓修)의 현손녀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제주에 안치된 송시열을 위하여 소를 올렸고, 1716년 7월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유생 60명이 연명하여 소를 올릴 때 그 소두(疏頭: 상소자의 우두머리)가 되어 윤선거(尹宣擧)와 아들 윤증(尹拯)을 논핵하여 그들의 관작을 추탈하고 윤선거의 문집을 훼판하게 하였다.
1722년 신임사화로 거제에 유배되었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방환되어 영릉(英陵)·희릉(禧陵)의 참봉을 지냈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쫓겨나 고향으로 은퇴하였다.